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머리를 높이 묶은, 작고 작은 키에 매서운 눈매, 굳게 다문 입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카리스마. 선생님의 첫인상은 그랬어요. 선생님은 저희와 무언가를 많이 함께 하고 싶어 했어요. 학급일기를 만들고 학급 문집을 만들고 많은 시간을 쌓고 추억을 쌓고 싶어 했어요. 만약 지금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며 더 많은 추억을 만들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당시 저는 중2병을 앓고 있었어요.
이제와 이해해 달라고 말하기 민망한 행동들도 많이 했죠. 선생님이 하자고 하는 활동마다 왜 해야 하냐며 딴지를 걸고, 참여하지 말자고 아이들을 선동하곤 했죠. 학급일기는 꼭 쓰라고 하셔서 한번 정도 쓴 게 다였고, 학급문집을 만든다고 글을 써서 내라고 할 때는 제출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 저를 쏙 빼놓고 문집을 만드실 수도 있는데, 수행평가로 제출했던 기행문을 문집에 고이 실어 주셨죠. 덕분에 그 문집은 아직도 저의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저를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해 주셨어요. 학생이라서 공부만 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으셨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기를 바랐고, 저희에게 질문하고, 또 들어주셨어요. 물론 생각보다 다정하지 않은,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가 중2병을 앓는 저를 더 뾰족하게 만들기는 했지만요. 지나고 보니 친구처럼 대해 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것저것 하자는 것 많은 선생님을 귀찮게 성가시게 생각한 제가 선생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또 다른 사건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가정방문이었죠. 선생님은 학급의 모든 아이들의 가정에 방문하셨어요. 아이들과 시간을 맞추고 부모님을 만나 뵙기도 하고요. 저희 집에도 오신다고 하셔서 제가 계속 못 오시게 둘러대고 내빼곤 했잖아요, 결국 갤로퍼에 태워 저를 집까지 데려다주시며 저희 집에도 왔다 가셨죠.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셔서 안 계셨지만 선생님은 저희 집과 저희 집의 상태와 저희 집 속에서 저의 흔적을 찾고 느끼며, 저를 이해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버릇없고 무례한 제자를 끝까지 보듬어주신 선생님께 끝까지 감사하다는 인사 한번 못했네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는데요, 세월이 흘러 타인을 만나고 알아가고 이해하려 할수록 선생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 선생님의 표현이 관심이었구나, 애정이었구나, 사랑이었구나 하고요.
선생님께 이 편지가 전달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어요. 문집 만들기에 실을 글 쓰는 게 싫어서 내뺐던 제자가 이제는 글을 쓰는 일을 하고, 글 쓰는 모임을 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며 어이없어하시겠죠? 학급문집 만들 때 정말 불평불만 많이 했는데, 세월 지나고 들춰보는 학급문집은 저를 15살 철부지 소녀로 데려가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만듭니다. 이럴 줄 알았음 더 많이 쓸 걸 그랬나 봐요. 그래도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추억할 수 있어 좋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다시 만나지는 못해도 추억 속에서 만나 못다 한 수다를 떨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를 마칩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