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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r 25. 2024

그림책이 개굴개굴

나를 긍정의 힘으로 살게 하는 나의 소울메이트

초록창에 두 글자를 입력한다. 날씨.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날씨 검색과 함께다. 어린 시절에야 날씨를 알기 위해서 아홉 시 사십 분 즘이면 방에서 튀어나와 뉴스 채널에서 스포츠 채널로 돌리려는 아빠의 리모컨을 잠깐 붙잡아야 했지만, 이제는 가볍게 손가락 운동만 하면 된다. 편해서 자주, 꼭 검색하게 된 것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옷차림과 우산 휴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날씨를 검색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검색 화면이 빠르게 넘어가 한 주의 날씨가 눈앞에 펼쳐지자마자 나는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눈썹을 일자로 만들어버렸다. 엊그제 화창한 여름 날씨 같은 봄날씨를 만끽한 탓에 얇은 옷을 입을 기대에 부푼 아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비 소식이 득실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기대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뒤로하고, 화요일에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멀리 가야 하는 일정이 있는 나는 그야말로 현실적으로 현실에 입각하여 현실을 마주하며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하늘의 일인 것을.



비가 오면 아이들의 옷이 젖을까 봐,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아이들이 우산을 놓고 올까 봐,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아이들의 신발이 젖어 내일 신을 신이 없을까 봐. 아무도 시키지 않은 해결할 수도 없는 걱정들을 끌어안는 걱정인형이 되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면 좋은 점은 그림책 읽을 맛이 더 난다는 사실이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부슬부슬 흙에 스며들며 창에 부딪히며 연주하는 비의 멜로디는 그림책 읽는 맛을 살려주는 향기로운 BGM이 되곤 한다. 열어놓은 창틈 사이로 멜로디를 타고 들어오는 소박한 비 냄새 역시 그림책을 4D효과로 더 깊게, 더 풍성하게 누리게 만든다.



그 맛에 취해 <야호! 비다> 그림책을 열었다. 비 오는 날에는 비와 관련된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꽤 촌스럽지만 꽤 매력적이다. 책의 장면이 현실에서 이어져있어 꼭 책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니까 매력적일 수밖에. 비의 정취에 취해 꺼내든 그림책을 채 몇 장도 넘기지 않았는데 더 이상 그림책을 넘기지 못하고 멈춰 섰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똑같은 프레임 속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그 장면에서 멈춰 섰다.  둘을 같은 풍경을 보지만 다른 방향을 쳐다보며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오늘 아침 장면을 CCTV로 찍어두었다면 이렇게 보였겠지 싶을 만큼 비슷하고도 닮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왼쪽을 바라보며 눈썹을 최대한 사납게 만들고는 잔뜩 심술 난 표정으로 "비가 오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오른편에서 아이는 오른쪽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비가 오네!"라고. 똑같이 말하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내려간 할아버지의 입모양과는 달리 반가운 것을 맞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세모 입을 장착한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비를 사랑하고 사랑했던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반가워 설레어 세모입을 만들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함께 있는 그 장면이 나를 붙잡았다.



대지를, 생명을 촉촉하게 적시는 비는 언제나 내 마음도 촉촉하게 적셨다. 비가 오면 괜스레 우울해져서 멍하니 감정에 취해 창을 바라보곤 했다. 바라보는 창밖에 하나 둘 물방울이 맺히는 것이 예뻤다. 물방울이 하나 둘 맺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나 둘이 되어서 또 하나를 더 만나 셋이 되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양새가 예뻐서 넋 놓고 바라보면 마음이 깨끗해졌다. 예쁜 것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예뻐지는 것 같아 비 오는 날을 더 사랑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내 집을, 내 주변을, 내 가족을 둘러봐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 나는 여유가 없었다. 귀찮은 빨랫감이 늘어나는, 잘못하다가는 신발 빨래까지 해야 하는, 일감이 끊이지 않는 피곤한 날이라고만 치부해 버렸다. 그런 내가 조금은 측은했다. 창밖에 빗물이 하나가 또 하나를 만나고 또 하나를 만나는 어여쁜 장면을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내가 조금 안타까웠다.



<야호! 비다> 그림책에서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많아서, 안 좋은 뉴스가 가득이라서 화만 내는 할아버지는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있어서, 카페에서 달콤한 코코아와 쿠키를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은 아이와 마주친다. 아이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며 보여준다. 인상을 쓰고 화를 내는 표정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아이처럼 비를 느껴본다. 아이의 모자를 쓰고 '개굴개굴' 아이처럼 말한다. 아이의 모습을 거울처럼 따라 한다. 웃으며 비를 맞이한다.


나는 그림책을 보며 나와 같은 모습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안타까운 나를 마주하고, 아픈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림책 속 개굴개굴을 따라 하며 비를 다시 사랑하는 그때의 나로 돌아가 본다. 달콤하고 달콤한 쿠키를 머금은 듯 그림책을 즐겨본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반밖에 없잖아라고 말하는 대신 반이나 있네라고 말하면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비가 오는 것도 짜증 나고 귀찮은 일거리로 볼 수도 있지만 예쁘고 예쁜 장면을 두고두고 저장할 수 있는 마음 충전소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할아버지처럼 평소처럼 잔뜩 화난 불평만 가득한 비가 사랑스러운 추억이 있는 비로 바뀔 수 있었던 건 긍정의 힘을 가진 그림책 덕분이 아닐까.



그림책 활동가로 활동하고 다닐 때면 나는 그림책의 힘은 무한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림책의 힘이 한계가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실감하곤 하기 때문이다. 끝없이 내달리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공간에 다른 환경에 사는 누군가들을 연결해 주는 힘도 가지고 있다. 비록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던 일로 만들어 줄 수도 없지만 작고 작은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낀다. 그리고 그림책으로 이렇게 함께 글을 쓰며 나의 마음을 보살피고 보듬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내게 긍정의 힘을 마구 일으킨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나는 희망을 마주한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현재의 나를 느끼고 미래의 나를 상상할 수 있어서. <야호! 비다> 책 속에서 비를 사랑하는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고 반가워하고, 비를 외면하는 현재의 나를 보며 속상했지만, 두 갈래의 모습을 모두 사랑할 미래의 나는 내 마음이 예뻐지는 순간을 비 오는 날마다 누릴 테니까 감사하고 고맙고 든든하다. 그림책이 개굴개굴 말을 걸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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