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름이 정해진 순간부터 나는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누구의 엄마라고 소개합니다. OOO산모님에서 OOO보호자로 명칭이 바뀌며, 30년 가까이 함께해 온 나의 이름보다는 새로운 호칭이 나를 찾습니다. 엄마가 되는 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잘 한 몇 가지 일 중, 손에 꼽히는 일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엄마가 되어 보라고 강력추천할 정도로요.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을 맞추는 순간, 나의 이름은 어딘가로 사라져 꽁꽁 숨어버립니다. 물론, 처음엔 그 이름이 사라진 줄도 모르지만요.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역할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기에 자기소개를 하면 늘 아이들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나이는 어떻고, 성별은 어떻고,,,, 이건 자기소개인지 아이 소개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30년 동안 살아왔던 본캐는 사라지고 고작 1,2년밖에 안된 부캐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지요. 내가 무슨 공부를 전공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도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나의 본캐를 찾고 싶었졌습니다. 원래 이름 말이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살고 싶어서요.
글쓰기는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역할보다는,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글 내용에 아이들과의 에피소드가 반 이상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글을 발행할 때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발행합니다. 책을 담아 책을 닮고 싶다는 소망으로 '책닮녀'로 지은 닉네임. 내가 나를 위해 정한 닉네임으로 글을 쓰고 발행하지요. 글쓰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나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에는 진심이 담겨있습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일들,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응어리를 글쓰기에서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섣불리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 눈치 보느라 맘껏 뱉어내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쏟아내고, 또 다듬어 표현하는 것이지요. 글쓰기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설령 '아이'나 '양육'을 주제로 글을 쓴다 하더라도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을 풀어내는,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내가 정한 이름으로 나의 이야기를 발행하면,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누구누구의 자식, 아내, 남편, 엄마, 아빠라는 호칭보다는 나의 이름을 찾고 싶지 않은가요?
영원히 내 것이 되지 않을 남의 회사의 OOO대리, OOO차장보다는 나만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은가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고 싶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