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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un 10. 2024

두부 반모를 사는 즐거움

옛날 옛적 두부 반모가 300 원하던 시절 이야기

지금이야 편의점이 즐비하고 대형마트의 소규모 상점이 곳곳에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장에 가서 필요한 식재료를 사 와야 했다. 높다란 언덕 위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내려와 굽이굽이 진 시장에 와서는 검정봉다리 하양봉다리에 갖가지 식재료를 담아 다시 언덕을 올라왔다. 장을 봐온 식재료로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엄마는 어김없이 아, 맞다는 외침과 함께 나의 이름을 부르시곤 했다. 



"앞에 가서 두부 반모 좀 사와라."



땡그랑. 짤짤짤. 100원짜리 세 개를 놓칠세라 두 주먹에 꼭 쥐고는 아파트를 나서 바로 옆 건물 유리 새시 문으로 열고 닫는 상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점에는 이러타할 간판도 없지만 유리 뒷면에 덕지덕지 붙여진 글씨가 여기가 여러 가지 재료를 파는 곳이구나 알 수 있게끔 한다. 두부를 비롯하여 파, 콩나물, 양파, 제철 과일 등등. 빨갛고 파란 구멍이 슝슝나있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지런히 담긴 과일들이 먹음직 스러지만 나의 임무는 오로지 두부 반모.



"아줌마, 두부 반 모 주세요."



아줌마는 노란 통에 덮어두었던 비닐을 걷어내며 칼을 집어든다. 자로 잰 듯 반을 뚝 잘라 하얀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너무 꼭 쥐고 있어 땀이 묻어 미끌미끌해진 동전을 아주머니의 손에 전해드리고 랄랄랄 랄랄랄랄라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온다. 행여 약하디 약한 두부가 으스러질까 봐 즐거운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돌아가곤 했다. 그 시절, 두부 반모를 사는 일이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엄마의 들썩이는 어깨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 집안에서 가장 작고 가장 어리고 가장 미약한 존재인 내가 집안의 밥상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심부름이 귀찮은 나이가 되어버린 언니는 내가 심부름을 해 주니 좋았고, 심드렁한 언니와는 다르게 심부름을 시키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버선발로 달려 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가 해맑게 웃어주는 게 좋았다. 엄마가 되고 보니 작은 일에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의 엉덩이와 입꼬리가 어찌나 살아있는 삶을 느끼게 하는지, 이제야 그때의 엄마 표정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또 너무 꼭 쥐고 와서 뜨끈뜨끈해진 동전을 받아 들며 무심하게 심부름을 잘하는 착한 아이라고 말해주는 가게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어린 나를 뿌듯하게 했다. 어느 순간 몸이 자라고, 머리가 자라면서 더 이상 심부름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집안의 막내라 심부름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두부 반모에서 시작해 밀가루와 사이다, 부탄가스를 사 오는 날에는 이제 내가 어느덧 자라 성인이 되었구나를 실감하곤 했다. 




하양 봉다리를 들고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는 조그마한 뒷모습이 그려진다. 심부름을 마치고 다 해냈다는 안도감에 스르르 미소 짓던 어린 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런 나에게 대견함의 궁디팡팡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부르던 노래를 함께 손잡고 더 힘차게 불러주고 싶다. 



만화영화 <신데렐라>의 주제곡의 일부분.

"오늘은 기분이 좋아. 랄랄랄 랄랄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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