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두부 반모가 300 원하던 시절 이야기
지금이야 편의점이 즐비하고 대형마트의 소규모 상점이 곳곳에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장에 가서 필요한 식재료를 사 와야 했다. 높다란 언덕 위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내려와 굽이굽이 진 시장에 와서는 검정봉다리 하양봉다리에 갖가지 식재료를 담아 다시 언덕을 올라왔다. 장을 봐온 식재료로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엄마는 어김없이 아, 맞다는 외침과 함께 나의 이름을 부르시곤 했다.
"앞에 가서 두부 반모 좀 사와라."
땡그랑. 짤짤짤. 100원짜리 세 개를 놓칠세라 두 주먹에 꼭 쥐고는 아파트를 나서 바로 옆 건물 유리 새시 문으로 열고 닫는 상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점에는 이러타할 간판도 없지만 유리 뒷면에 덕지덕지 붙여진 글씨가 여기가 여러 가지 재료를 파는 곳이구나 알 수 있게끔 한다. 두부를 비롯하여 파, 콩나물, 양파, 제철 과일 등등. 빨갛고 파란 구멍이 슝슝나있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지런히 담긴 과일들이 먹음직 스러지만 나의 임무는 오로지 두부 반모.
"아줌마, 두부 반 모 주세요."
아줌마는 노란 통에 덮어두었던 비닐을 걷어내며 칼을 집어든다. 자로 잰 듯 반을 뚝 잘라 하얀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너무 꼭 쥐고 있어 땀이 묻어 미끌미끌해진 동전을 아주머니의 손에 전해드리고 랄랄랄 랄랄랄랄라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온다. 행여 약하디 약한 두부가 으스러질까 봐 즐거운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돌아가곤 했다. 그 시절, 두부 반모를 사는 일이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엄마의 들썩이는 어깨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 집안에서 가장 작고 가장 어리고 가장 미약한 존재인 내가 집안의 밥상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심부름이 귀찮은 나이가 되어버린 언니는 내가 심부름을 해 주니 좋았고, 심드렁한 언니와는 다르게 심부름을 시키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버선발로 달려 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가 해맑게 웃어주는 게 좋았다. 엄마가 되고 보니 작은 일에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의 엉덩이와 입꼬리가 어찌나 살아있는 삶을 느끼게 하는지, 이제야 그때의 엄마 표정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또 너무 꼭 쥐고 와서 뜨끈뜨끈해진 동전을 받아 들며 무심하게 심부름을 잘하는 착한 아이라고 말해주는 가게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어린 나를 뿌듯하게 했다. 어느 순간 몸이 자라고, 머리가 자라면서 더 이상 심부름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집안의 막내라 심부름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두부 반모에서 시작해 밀가루와 사이다, 부탄가스를 사 오는 날에는 이제 내가 어느덧 자라 성인이 되었구나를 실감하곤 했다.
하양 봉다리를 들고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는 조그마한 뒷모습이 그려진다. 심부름을 마치고 다 해냈다는 안도감에 스르르 미소 짓던 어린 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런 나에게 대견함의 궁디팡팡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부르던 노래를 함께 손잡고 더 힘차게 불러주고 싶다.
만화영화 <신데렐라>의 주제곡의 일부분.
"오늘은 기분이 좋아. 랄랄랄 랄랄랄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