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 이상 사시면 추첨권을 드려요. 하나 뽑아보세요."
점원이 추첨권을 부채처럼 펼쳐 들었다. 중간에서 뽑으려다 다시 집어넣고 가장 끝쪽의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얼른 동전을 꺼내 힘주어 긁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둥그런 숫자. 제발 3등이라도. 아.... 그럼 그렇지. 3등 인척 하는 6등이었다. 그래, 행운 그런 게 나에게 있을 리가 없지. 점원은 꽝도 있는데 6등이 나왔다고 축하한다며 6등 상품인 양말을 챙겨주었다.
언제나 그랬듯 빗나간 행운에 아쉬운 입맛만 다시며 집으로 향했다. 점심을 못 먹은 지라 배가 고팠던 내 눈에 들어왔던 건 땅콩빵이었다. 둘째를 가졌을 때 맛있게 먹었던 땅콩빵의 맛이 기억나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줄줄이 늘어선 줄에 나도 한 자리를 꿰찼다. 드디어 내 차례. 이미 구웠던 땅콩빵이 다 소진되었단다. 1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10분을 기다렸는데. 10분을 더 못 기다리겠냐며 오기가 생긴 마음을 애써 구겨 넣고는 쿨한 척 괜찮다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10분이 흘러 종이봉투에 땅콩빵을 담고 지폐를 내밀고는 돌아선 순간.
390번 버스가 지나갔다. 앗, 배차간격이 15분인데. 다시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번스를 탈 수도 있지만, 380번은 한참을 돌아가고, 2-1번은 먼 정거장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가야 한다. 땅콩빵 하나 사려고 35분을 쓰게 된 셈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기다리느니 뜨끈한 땅콩빵이나 먹으며 걸어가는 걸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걱우걱 땅콩빵을 입에 집어넣으며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둘째를 임신해서 먹었을 때처럼 맛있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파서인지 게눈 감추듯 뱃속으로 사라졌다. 5분 만에 가루까지 탈탈 털어 넣었다. 종이봉투를 구겨 호주머니에 넣었다. 배가 좀 부르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는데 15분 만에 온다던 다음 버스가 쌩하니 더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하아. 진짜 운도 없지.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다음생에는 제발 행운아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었는데, <그림책으로 내 인생 찾기> 모임을 하며 만난 E의 한마디에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북돋아 주는 한마디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힘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등등이 오가는 와중에 E는 '나는 운이 좋아'라는 주문을 외운다고 했다. 작은 것에 행운을 찾고 감사하고 스스로에게 운이 좋으니 뭐든 잘할 거라 긍정의 힘을 불어넣는다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이제껏 운이 없다고 생각한 내 하루에도 행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추첨권을 뽑으며 설레는 마음을 가진 행운, 꽝 대신 작지만 뜻밖의 선물을 받아가는 행운, 그때 그 시절 추억의 음식을 마주한 행운, 식어버린 땅콩빵이 아니라 뜨끈한 땅콩빵을 맛볼 행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기에 더 오래 바라본 노을 지는 하늘의 아름다운 행운까지.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내 인생에 도사리고 있는 게 행운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같은 행운. 하지만 어디에나 앉아 있는 먼지 같은 행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우주에서 먼지가 뭉쳐져 만들어진 거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 삶 그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오늘도 작은 행운을 찾으며 주문을 외워본다.
나는 운이 좋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운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