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첨벙 첨벙
첨벙. 훌렁훌렁 웃옷을 벗어던지고는 뛰어들었다. 물과 발바닥이 맞닿아 내는 탁탁탁 소리는 맑고 경쾌했다. 발바닥에서 무릎, 배로 차가운 물과 맞닿는 면적이 넓어졌다. 머리까지 짜릿한 시원함이 느껴지자 파도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숨을 참았다가 내쉬고 참았다가 내쉬고 캄캄한 푸름과 청량한 하늘이 번갈아 맞이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평선 위로 둥그런 태양이 나를 비춰주었다. 차가웠던 살갗이 이내 따스함으로 데워졌다.
물에 모든 걸 맡기고 싶어졌다. 숨을 참으며 고개를 넣었을 때 보이던 깊고 검고 푸르던 그 속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뱃속에서 온 힘을 빼고 잠을 청하던 태아의 시절에도 캄캄한 어둠에 있지 않았던가. 투명해서 속이 비치는 양탄자에 몸을 뉘었다. 발가락부터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배 가슴 팔과 목 그리고 얼굴까지 서서히 힘을 뺐다. 귓속에 물이 꾸르륵하고 들어왔다. 하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귀 속에 채워진 물이 다른 잡음들은 음소거시킨 채, 오롯이 내 몸에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감았던 눈을 스르르 열고는 태양에게 인사를 건넸다. 온기를 채워주던 태양은 나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냐고 물었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던 내 몸을 뒤집어 투명 양탄자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빨주노초파남보 색색의 물고기와 산호초들이 어우러져 해저 속 무지개를 보는 듯했다. 커다란 조개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부드러운 미역으로 몸을 감싸보기도 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새끼를 부르는 어미 고래였다. 고래의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집으로 돌아오라는 따스한 마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꾸룩꾸룩 더 이상 숨 참기가 어려워졌다. 아름다운 세계에 넋이 나가 너무 깊이 내려와 버렸다. 위로 힘겹게 올라가는 내 옆으로 슬며시 누군가가 다가왔다. 내밀어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밝은 빛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해수면 위에서 햇빛에 비친 빙그레 웃는 얼굴을 마주했다. 상괭이였다. 하마터면 숨이 막혀 울 뻔했는데, 상괭이의 웃는 얼굴에 나도 따라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뛰어올랐다.
첨벙. 첨벙. 첨벙.
한 바탕 물놀이를 하고 상괭이는 싱긋 웃는 얼굴로 사라졌다. 다시 또 만나자는 찡긋과 함께. 상괭이와 반대 방향으로 팔을 젓기 시작했다. 모래와 맞닿은 발바닥에서 이번엔 철벅철벅 소리가 났다. 경쾌했던 발바닥 소리는 물에 젖어 중후한 소리를 냈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비릿하게 느껴졌던 바다 내음이 내 몸에 스며들어 이제는 향긋한 여름의 냄새가 되어 있었다. 훌훌 벗어던졌던 옷을 주워 들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모래사장 끝에 다다랐을 때 들려온 소리. 첨벙. 상괭이 었다. 손에 들고 있던 옷가지를 하늘로 던졌다. 나는 다시 뜨거운 모래를 날듯이 뛰어 물속으로 날았다. 첨벙.
살면서 단 한 번도 물에 뜬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그래서 어디든 모험을 떠날 수 있다면 바닷속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아서 그런지 바닷바람에 질려 바다가 예쁘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내가 바다를 떠나 도시에 살다 보니 가끔 바다내음이 그리워지곤 한다. 바닷속에서도 인어처럼 자유롭게 숨을 쉬고 바다생물들과 교감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투명 양탄자를 몸에 스르르 감싸 안고 검고 푸르른 세계로 첨벙 모험을 떠나고 싶다.
그림책으로 글쓰기 9기 <그레이엄의 빵 심부름>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