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를 꺼내어 물기를 짠다. 오이는 씨 부분을 발라내고 키친타월로 닦아준다. 계란 10개를 그릇에 푼다. 약간의 소금 간을 더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는다. 한참 예열을 한 후 낮은 불에 계란물을 올린다. 얇은 계란 지단을 계속해서 구워낸다. 굵고 길게 자른 햄을 프라이팬에 넣고 기름 샤워를 시켜준다. 이번엔 맛살이 등장한다. 으스러지지 않게 살살 굴려준다. 살짝 불에 데워 재료가 상하지 않도록 한다. 마지막, 어묵은 얇게 채 썰어 설탕과 간장으로 맛있는 옷을 입힌다. 다시마를 넣어 완성한 고슬고슬한 밥을 양푼에 덜어내 참기름과 통깨, 소금을 버무린다. 고소한 냄새가 섞인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코를 지나 입, 목까지 흠뻑 젖어들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삼켜진다. 이제 준비 완료. 시작해볼까?
대한민국 사람 중에 김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이를 빼고, 우엉을 빼고, 당근을 빼고 먹는 사람은 있어도 김밥을 아예 빼는 사람은 ,,,,
음 아직까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싸기는 싫어도 먹기는 좋은 음식, 김밥.
김밥을 먹는 사람에서 싸는 사람으로 바뀌고 나니, 음식 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김밥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풍에는 김밥이지, 왜? 소풍이니까.
김밥을 그냥 먹는 건 참 좋았다. 엄마가 김밥을 준비하면 옆에 쭈그리고 앉아 햄이며 맛살이며 집어 먹었다. 사실 김밥보다 손질해 놓은 재료를 야금야금 먹는 게 꿀맛이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가끔 옆구리 터지는 김밥을 날름 받아먹으며 입도 맘도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골고루 먹지 않아도 골고루 먹게 되는 김밥은 식사시간이 지겨운 어린 시절 나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백 점짜리 메뉴가 싫어지는 날이 있었다. 그건 바로 소풍날. 차만 타면 멀미를 했던 나는 소풍날이면 늘 속이 안 좋았다. 니글니글, 울렁울렁 속을 겨우 부여잡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다. 40명 남짓한 아이들이 일제히 도시락 뚜껑을 열면, 온갖 재료들의 냄새가 뒤섞여 올라온다. 그 냄새를 맡노라면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김밥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소풍날 먹는 김밥은 왠지 내게 벌칙 같았고, 왜 소풍에는 김밥을 꼭 싸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엄마에게 가끔 다른 음식을 싸 달라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소풍에는 어김없이 김밥이 등장했다. 소풍이니까. 소풍에 다른 메뉴도 괜찮을 텐데 라고 생각했던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소풍날은 김밥이지!' 하고 외치게 된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소풍지에서도 김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소풍다운 소풍을 즐기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소풍을 갈 그날에 또 김밥을 싸리라 상상해본다. 왜냐면, 소풍이니까.
눈물 젖은 삼각김밥
김밥이 싫어지는 날이 있었다. 혼자 3평 남짓한 고시원에 살던 시절.
고향이 부산인 나는 원대한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꿈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이어나갔다. 가난하지는 않지만 넉넉하지는 않은 가정형편에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러던 중 경력을 쌓을 일자리가 생겨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취직은 했지만 더 높은 목표가 있었기에, 일을 하고 나면 서울로 가서 학원 수업을 듣고, 틈틈이 면접을 보러 다녔다. 꿈을 놓지 않겠다고 참 아등바등하며 살았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은 2교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오전, 오후가 나뉘어 있었다. 그날은 내가 오전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지방에서 면접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오전 근무를 부탁을 하고 새벽같이 떠났다.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직장으로 향했다. 오후 근무를 위해서. 오전 내내 우유 한잔으로 버티며 시험을 치르고 나니 돌아가는 길에서야 배가 고파왔다. 밥을 먹을 시간은 없고,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 하나를 샀다. 부랴부랴 일터로 돌아와 교대를 하고, 바쁜 일처리를 끝낸 후 삼각김밥을 꺼냈다. 독립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 그래도 김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가 고팠는데, 사실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김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왠지 모를 서러움에 나오려는 눈물도 꾹꾹 삼키며. 그 이후에도 혼자 사는 나에게 삼각김밥(당시에는 지금의 편의점처럼 다양한 메뉴가 없었기에)은 끼니를 이어가는 허기를 채워가는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모든 걸 접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길을 바꾼 뒤부터는 삼각김밥을 절대 먹지 않았다. 그냥 먹고 싶지 않았다. 먹다 보면 체할 것 같아서.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은 삼각김밥 하나 사 먹고 싶어 진다. 왠지 나의 젊은 날의 열정이 다시 살아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무슨 맛을 먹을지 벌써부터 고민된다.
김밥집 아니고요, 가정집입니다.
뭐든지 잘 먹는 신랑이지만 김밥을 참 많이도 좋아한다.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그러니까 식구가 신랑과 나 이렇게 두명일 때 김밥을 쌌다. 그때는 초보주부의 티를 벗지 못했기에, 10줄 세트로 만들어진 김밥 재료를 사 와서 딱 10줄을 만들었다. 사실 10줄을 말면서도, 이걸 누가 다 먹을까? 남으면 어떡하지? 걱정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원식구들은 워낙 양이 작아서 김밥 10줄을 싸면 언니와 내가 도시락으로 김밥을 가져가고, 그날 저녁을 김밥으로 대체해서 온 식구들이 먹어도 늘 몇 줄이 남았으니까. 그러니 두 식구인 우리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신랑은 오히려 부족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10줄을 쌌는데, 싹 먹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렇게 김밥의 양은 점차 늘어갔다. 첫 아이를 낳고는 15줄. 둘째가 어느 정도 커서 4 식구가 온전히 김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20줄을 싸기 시작했다. 한 줄을 말아 썰지 않은 채로 분명히 식탁에 올려두었는데, 감쪽 같이 사라진다. 썰기도 전에 줄을 잡고 먹는 남편. 저리도 김밥이 좋을까? 가끔 20줄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래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건 내 밥솥이 10인용이라 20줄이 최대치라는 것. 앞으로도 더 큰 밥솥은 안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김밥에는 단무지, 당근, 우엉, 오이, 계란, 맛살, 햄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재료를 넣고 그냥 둘둘 말면 되는 김밥이 뭐 힘든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재료 준비와 김밥말기, 그리고 가장 난도가 높은 썰기, 마지막으로 참기름 잔뜩 묻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정성과 사랑이 없다면 만들지 못할 음식이다. 나 역시도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신랑이 좋아하니까 만든다. 내가 먹고 싶었다면 한 줄 사 먹고 말 텐데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나의 온기와 마음을 듬뿍 담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만든다. 먹는 사람일 때도 좋았던 김밥, 만드는 사람이 되니 더 좋다. 물론 20줄을 싸고 썰기를 시작할 때는 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김밥에 미운 정, 고운 정, 애정을 담아 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