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누군가 만나서 하루 종일 거릴 걷고 싶을 땐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죠 오랫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5년 만에 최신폰으로 기기를 변경했더니, V컬러링이라는 걸 선물로 주더라는. 아날로그 of 아날로그인 나는 '그게 뭔데?' 하고는 그냥 묵혀두었다. 어느 날 도착한 알림을 남편이 보더니 V컬러링 쿠폰 만료기간이 오늘 까지라며 얼른 구매하라고 했다. 공짜는 놓칠 수 없는 아줌마 본능은 아날로그녀인 내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시곗바늘을 20년쯤 돌려 생각해보면 컬러링이 생겼을 때 참 획기적이었다. 그때는 나름 젊고 젊었던 인싸 시절이었기에, 매달은 아니더라도 자주 컬러링 분위기를 바꾸곤 했었다. 연애할 때는 알콩달콩하게 이별 후에는 미련美을 철철 내뿜으며 선곡을 했더랬다. 또 가끔 싸우고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 60번 똑같은 노래 똑같은 구절을 듣다 보니 좋아했던 노래가 싫어지기도 했던 그런 추억이 담긴 컬러링.
어떤 노래를 할까? 무슨 노래가 좋을까? 오랜만에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컬러링을 골랐다. 요즘 컬러링은 시대에 걸맞게 가요뿐만 아니라 보이는 뮤직비디오가 지원이 되고, 자연 풍경이나 재미있는 멘트도 제공되고 있었다. 너무 가벼워 보이는 재미난 영상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듯했고, 자연풍경 영상이 미친 듯이 끌렸지만 사진첩에 자연 사진이 많으면 뭐 늙어가는 증거라나? 여하튼 그래서 자연도 아웃. 영어를 못 듣는 막귀라, 팝송은 지극히 오래된 OST정도만 좋아하기에 제외. 역시 가요밖에 없었다. 가사의 감성을 오래도록 곱씹어 보는 나는 여러 곡을 들어보았다. 음,, 신곡은 너무 정신 사납고 무엇보다 곧 유행이 끝나면 또 돈을 들여 바꾸어 줘야 하니 역시 패스. 돌고 돌아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곡은 '토이'의 <그럴 때마다>를 리메이크한 '백예린'의 <그럴 때마다>. 사실, 컬러링을 고를 때 처음 들었던 곡인데, 역시나 2시간의 고민 끝에 처음으로 돌아왔다. 원래부터 좋아했던 곡을 요즘 가수가 부르는 느낌, 좋았다. 잔잔해서 좋았고, 가사가 더 찬찬히 잘 들려서 좋았다.
며칠 뒤 전화가 울렸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같은 동네에서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나 이제는 나의 친구가 된, 이사를 가버린 언니가 전화가 왔다.
"야~ 너 왜 그래. 이게 뭐야~~"
"네? 뭐가요?"
이렇다 할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순간 걱정했던 내게 언니는 컬러링 이야기를 꺼냈다.
"컬러링 말이야~ 옛날 사람 티 내는 거야. 너무 옛날 노래잖아~"
"하하 저 옛날 노래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언니도 취향 같으면서~~ 근데 이거 리메이크예요, 요.즘.가.수가 부른 옛날 노래!"
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그러네, 그걸 몰랐네~~~ 근데 가수가 누구야?"
"백예린이요~ 리메이크 버전도 좋아요~~~ 들어봐요"
옛날 사람. 나이로 본다면 완전 옛날 사람은 아닌데,,, 아직 인생의 반도 달려오지 않은 나름 절머니인데, 그렇지만 나는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 내 나이 또래와 이야기하면 모를 법한 옛날 노래들을 많이 알고 있다. 우리 가족은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이상우(하룻밤의 꿈), 신인수(장미의 미소), 이정봉(그녀를 위해), 이정현(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등 내 나이 또래에서 조금은 생소한 가수들을 남편을 통해 많이 접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꼭 남편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를 즐겨 듣다 보니 흘러나오는 옛 노래가 좋았다. 대학교 방송국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굳이 LP로 사랑의 대화를 틀어 엔지니어를 고생시키곤 했다. CD와 LP의 맛은 확연히 다르기에 엔지니어의 따가운 눈총에도 큐시트에 버젓이 써놓았다. 요즘 노래도 좋은 멜로디에 주옥같은 가수들이 많지만, 옛날 노래의 감성은 나를 촉촉하게 만든다. 가사를 읽고 읽고 또 읽고, 그 속에 빠져들게 한다. 마치 멜로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듯한 상상을 하게 한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느낌, 어둡지만 그 속에서 나를 비춰주는 달그림자를 온몸으로 받는 느낌. 그래서 좋다.
엊그제는 도서관에 들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르는 곳. 예전에는 보고 싶은 작가를 찾아서, 보고 싶은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무작정 끌리는 그림책을 골라와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마음에 드는 표지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고 있던 와중, 손가락이 멈추었다. 그리고 나에게만 마이마이의 세모 모양 버튼이 눌러졌다.
너에게 난, 해 질 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너에게 난, 나에게 넌』
2018년 송봉주 글, 안병헌 그림의 그림책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다시 회자되어 요즘 사람들도 알법한 노래.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자전거 탄 풍경과 조승우와 손예진의 클래식 영화가, 그리고 전지현의 올O푸스 광고가 먼저 스친다. 중학생 시절 이 영화를 보며 조승우라는 배우에게 뿅 가는 바람에 앨범까지 구매한, 그 노래가 그림책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에 담기다니. 그림책 속 사자는 오랫동안 세 아이의 곁을 지켜준다. 노래를 부르며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 때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언제나 초록의 슬픈 노래로 가슴속에 남아준다. 이 노래처럼 언제나 함께 있어준다.
누군가가 그랬다 그림책은 노래 같다고, 노래를 들으면 함께 들었던 사람, 그때 들었던 나의 상황이 생각난다고, 추억을 담고 있다고. 그리고 그림책도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그림책을 열면 함께 보았던 사람, 그 공간, 그 냄새가 되살아난다. 아이와 살을 맞닿으며 박장대소했던 그림책, 도서관 창가 너머로 햇살이 비추던 그곳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며 읽었던 그림책. 그림책도 노래처럼 나를 시공간을 초월한 추억으로 데려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