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7가지 강박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강박flex

by 책닮녀

"아! 잠깐만"

주차장으로 가던 아이들을 멈춰 세웠다.

"잠깐만 있어. 엄마 문 확인 좀 하고 올게"

언제나 그러하다는 듯이 다녀오라는 아이들.

100m 달리기 21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나도

이때만큼은 우사인 볼트로 변신한다.

덜컹, 덜컹, 덜컹

문이 잠긴걸 세 번 즘은 더 당겨 본 후 다시 주차장으로 달렸다.

다시 한번 더 우사인 볼트가 되어.


강박증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질환.


나에게는 강박증이 있다. 앞서 내가 말한 사례를 보며 뭐 그 정도쯤이야 다들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아마 이 글이 끝이 날 때쯤에는 좀 많긴 많네 라고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는 섣불리 내뱉을 수 없는 나의 강박에 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강밍아웃(강박증 커밍아웃)을 시작한다.


1. 대문은 잠갔나? 가스는 잠갔나? 고데기 플러그는 뺐지?

외출하기 전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강박과 불안이 있는 나는 번호키만 믿고 살 수가 없다. 늘 이사하는 집마다 번호키 더하기 아날로그 방식의 특수키를 설치했다. 더불어 낯선 사람과 잠깐 문을 열어 놓고 용무를 볼 때 사용하는 거는 열쇠도 함께. 집을 비울 때는 항상 두 개의 열쇠를 잠그고, 5번 이상은 문을 잡아당겨보고, 그러고도 가다가 중간에 돌아와 확인을 하고 외출을 한다. 참, 내가 봐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 어쩔 수가 없다.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옴과 동시에 4개의 열쇠가 탁 드르르 탁탁하고 잠긴다. 대문을 잠갔는지에 대한 강박은 집에 들어와서도 확인, 아이들을 재울 때도 확인, 내가 잠자기 직전에도 확인한다. 벌써 피곤해진 느낌인가? 이제 시작인걸 후후


2. 외출하고 오면 반드시 발 씻기, 침대에 외출복은 절대 허락 못해.

역시 평범한(?) 강박 중 하나다. 하지만 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셀 뿐. 외출하고 돌아오면 발을 씻는 게 우리 집 철칙이다. 물론 겨울에는 양말을 반드시 착용하니까 조금 덜 씻기는 하지만, 맨발로 돌아다니는 태권도 학원을 다녀오거나, 슬리퍼를 신고 바깥에 나갔다 오는 경우,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을 한 경우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얼른 씻으러 가라고 호통을 치는 게 가끔은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이미 잘 적응되어 있다. 또 외출복을 입고는 절대 절대 절대로 침대에 누울 수 없다. 나에게 침대는 가장 청결한 공간이니까. 이불빨래는 하기 힘드니까.



3. 배달음식을 식탁에 바로 올리면 부부싸움 나는 날.

배달음식의 요즘 배달 형태는 비대면이라는 트렌드답게 음식을 바닥에 내려놓고, 벨을 누르고는 라이더는 홀연히 떠나버린다. 사과머리로 들어 올린 앞머리와 무릎 나온 바지 차림으로 시커먼 헬멧을 쓴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참 안전하고 편리하고 좋긴 하다. 요즘 같은 코시국에는 더 어울리기도 하고. 하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으니... 흙과 먼지가 한 몸이 되어 뒹구는 아파트 복도 땅바닥에 내려놓는다는 것. 한 번은 신랑이 도와준다며 봉지채 싱크대도 아닌, 원목 식탁에 옮겨 놓았다가 부부싸움이 날 뻔했다. 그래도 이제는 10년쯤 같이 살다 보니 나의 강박의 이유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주는 나름 깔끔한 남편. 봉지를 벗기고 음식을 하나하나 옮겨야 하는 수고로움을 몸소 실천해준다. 여보, 사랑해^^



4. 의자는 반드시 집어넣을 것.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의 집을 방문했다가 냉장고를 열었던 장면이 생각이 난다. 아니, 아니, 여기서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다행히 물건의 줄을 맞춰야 하는 강박은 없다. 하지만 의자는 식탁 안으로, 책상 안으로 쏙 집어넣어야 한다. 이건 물건의 열을 맞춘다기보다는 어릴 적 들었던 괴담 때문이다. 불혹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뭐 의자를 열어놓고 자면 귀신이 앉아서 자는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나? 귀신을 믿지 않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음 마음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으니 잠자기 전, 방마다 돌아다니며 의자를 밀어 넣는다.


5. 빨래를 뒤집어서 널면 속 뒤집어지는 일이 생겨!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전해 내려 오는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참 많다. 예를 들면 지금은 사라져 버린 문지방을 밟으면 복이 나간다, 시험날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빨린 죽는다 등등 어릴 적부터 흔히 들어왔던 금지된 이야기들이 있다. 여기에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작자미상의 빨래에 관한 미신을 들었으니, 빨래를 뒤집어서 널면(여기서 빨래는 특히 남편의 속옷을 지칭한다) 속 뒤집어지는 일(바람, 불륜)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하,,, 이 말을 듣고 나니 뒤집어서 널 수가 없다. 신랑이 그리 아니 전혀 잘 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뒤집어 널수없는 찝찝함이 생겨버렸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남편이 있다면, 아내가 있다면 빨래를 뒤집어 널지 못하게 될 거라는.

6. 콩나물 꼬리는 꼭 다듬어야 하나요?

키는 작은데 유난히도 콩나물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은 콩나물 다듬기를 한다. 1봉이 될 때도 있고 2봉이 될 때도 있고. 그런데 2봉 정도 콩나물 다듬기를 하다 보면, 누가 꼬리를 꼭 떼어 내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나는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식성이야 개인 취향이니 그냥 먹어도 그만인 것을. 주변 엄마들은 언제 콩나물 꼬리를 다듬냐며 그냥 해도 맛만 좋단다. 가게에도 대부분 그렇게 쓴다고 나에게 편하게 살라는 조언을 한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도 콩나물 2봉을 모두 다듬었다.... 콩나물 꼬리는 꼭 다듬어야 할까? 그냥 먹어도 죽지 않는데. 내일은 그냥 요리 해볼까?이래놓고 또 다듬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7. 뾰족한 건 싫어.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일까? 술을 먹고 우리 집에 와서 난동을 부리는 친척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칼이 등장한 적이 있다. 칼부림이 나는 심각한 상황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큰 충격이기는 했나 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칼을 무서워한다. 이런 걸 고급진 말로 선단 공포증이라고 한다나? 10년 차 주부가 칼을 무서워하면 요리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테다. 그런데 사실 내가 들고 있는 칼은 괜찮다. 끝이 나를 향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이 든 칼은 왜 하나같이 나를 향하는 것 같은지.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나를 향하는 게 못 견디게도 싫다. 그래서 우리 집 과일은 늘 내가 깎는 걸로. 탕탕탕.



누구나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강박을 일곱개(사실 더 있을겁니다)나 가지고 있는 나. 조금은 스스로를 힘들게 조이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혼자만의 규칙을 지키며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거라고 나를 다독여본다.



음...


그런데요...강박이요..

저만 있는거 아니죠?

저 괜찮은 거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정지 STOP, 한글도 영어도 모르면 뭐라고 써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