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층 집에 살게 되다니

인생사 새옹지마

by 책닮녀


결혼을 하면서 시어머니와 남편과 집을 보러 다녔다. 몇 가지 선택지를 두고 어머님은 1층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너 1층이 얼마나 편한지 아니? 애들 뛴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엘리베이터 안 타도 되고, 1층 좋아. 예전에 보행기만 타도 난리가 나서 엄청 고생하다가, 1층 가서 사니까 천국이 따로 없더라. 1층 어때?”

당시 나는 태어난 아이도 없었고, 임신 상태도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 할 남자와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꾸는 예비 신부에게는 먹히지 않을 초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둘만의 알콩달콩함과 뜨거운 신혼을 담기에는 1층은 조금 멀게 느껴졌기에 그저 웃을 뿐. 우리는 15층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둘째까지 태어나고 나니 조금 더 큰 집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더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집을 보러 다녔고, 그때도 어머님은 1층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신혼 초에는 생각도 않던 질문이었지만, 아이들을 떠올리며 잠깐 '1층은 어떨까?' 하고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도 고개가 종으로 저어 지지 않고 횡으로 저어졌다. 평생 1층에 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어머님께 단호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8층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커다란 덩치의 한 남자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랫집 사람입니다."

자신을 밝히기만 했는데 왠지 모르게 철렁했다. 그리곤 문을 열었다.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노산에 초산이라 조금 예민한 상황이라고 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며 주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큰 아이가 여자고 둘째는 아장아장 걷는 남자아이인지라 다른 집에 비하면 큰 소음을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래된 아파트에 아이들이 콩콩콩 걷는 소리가 그럴 수도 있겠다며 죄송한 마음에 허리를 굽혔다. 며칠 뒤 미안한 마음에 과일을 가져가 인사를 하며 앞으로 더 주의하겠다고 했다. 돌아와 남편과 나는 주문해 놓은 매트 시공 작업을 했다. 지금이야 돈만 주면 매트를 딱 맞게 시공해주는 업체가 많았지만 그때는 그런 정보가 잘 없었기에, 손수 매트를 사서 우리 집 에어컨과 소파 모양에 맞게 잘라 시공했다. 단 하나의 틈도 없이 매트를 깔았고, 층간소음 슬리퍼를 신고 사뿐사뿐 걸었다.



얼마 뒤 선물한 과일에 보답하겠다며 아랫집 여자가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자신이 너무 예민했다고 미안해하며 집안까지 들어와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그동안 딸아이는 사부작사부작 혼자 놀기를 했고 둘째는 낮잠에 빠져있었다. 우리 집이 그렇게 시끄러운 집이 아님을 몸소 체험하고 아랫집 여자는 돌아갔다. 활짝 웃으며 잘 지내보자며.


그렇게 층간 소음 해프닝은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산책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체통에 하얀 봉투가 꽂혀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적혀있지도 않은 하얀 봉투가 조금 꺼려졌지만 열어보았다. 장문의 편지가 써져있었다. 직접 층간 소음을 측정해 보았더니 53 데시벨이 나왔으며 이는 층간소음 최고 한도인 57 데시벨에 육박하다고.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적혀있었다.(사실 층간소음이 윗집의 윗집이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윗집의 옆집이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어이가 없었죠) 불과 며칠 전 임신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넨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가 돌아오니 무서웠다.



다음 날, 다시 딩동 하고 벨소리가 울렸고, 아랫집 남자가 서있었다. 여전히 건장한 체격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층간소음 분쟁위원회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혈질인 남편이 나섰다가는 칼부림이 등장하고, 뉴스에 나오는 인물이 될까 봐 무조건 미안하다며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로 아랫집 남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집을 내놓았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장만한 진짜 우리 집이었기에 애착이 있었고, 오래된 아파트를 올 수리해서 들어왔기에 좋았다. 나름 좋은 위치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오래오래 살려고 했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조금 좁은 게 흠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떠날 계획은 아니었는데...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곧 거래가 성사되고 나는 1층 집만 보러 다녔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오게 되었다. 이사 오는 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집에서 안 뛰어다니는 사람은 혼나는 거야! 알겠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원 없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물론 1층 집의 울림도 타고 올라온다는 것을 알기에 늦은 시간이나 너무 심한 울림은 삼가면서 말이죠^^)






이사를 나오며 신랑은 아랫집에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쓰레기 폭탄이라도 가져다 놓고 싶은 마음이라고. 나 역시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우리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왔다. 우리가 함께 마련한 첫 집을 쫓기듯 이별하고 나왔을 때 헛헛하고 아쉬웠다. 그 사람들 때문에 새집에 오게 된 게 그리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바라보니 그 사람들 덕분에 오히려 잘 된 듯하다. 좋은 동네에 자리 잡고 좋은 이웃들도 만났고 넓은 집에서 마음껏 뛰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뭐 집값은 그 집도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이제와 옮기려면 더 많은 부담이 들기에 경제적인 부분도 흐름을 잘 탄 듯하다. 그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곳이었지만, 이제는 그 사람들 덕분에 좋은 일이 되었구나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그 노산에 초산이라던 아랫집 여자, 뱃속 아기가 아들이라고 했는데... 똑같이 층간소음 좀 당해봐라라는 마음은 여전히 있다는요, 저 못된 건가요?)



그렇게 나는 어머님께 단호하게 말씀드렸던, 평생 절대 오지 않을 거라던, 1층 집에 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더 재미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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