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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19. 2021

200원에 30분, 방방이타던 그 시절

그때처럼 즐겨봅시다. 인생도

9살의 나는 성당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학교에서 보지 못하는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좋은 어른들과 보내는 시간이 따뜻하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동그란 그것이 주어지는 날이었기에 설레었다. 토요일마다 나는 엄마에게 500원짜리 동전을 받았다. 성당에 가서 헌금하라고 주시는 용돈이었다. 미사가 시작하려면 몇 시간은 더 남았는데,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성당에서 마주친 친구들.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가자!”     


친구들의 손을 잡고 뛰어간 곳은 다름 아닌 방방이 타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키즈카페가 없었다. 오로지, 야외에 방방이만 덜렁 있는 곳이 있었다. 200원을 내면 30분 동안 친구들과 우정의 땀을 흘리며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던 곳. 나는 엄마가 주신 귀한 헌금을 쪼개어 방방이에 몸을 실었다. 즐겁게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러 가면 하느님도 이해해 주실거야! 애써 포장하며 신나게 방방이를 탔다. 검은 그물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하늘을 향해 점핑을 즐겼다.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놀이가 방방이였다. 중력에 의해 땅과 두 발을 맞대어 밀어내는 느낌에서 벗어나 가볍게 튀어 오르는 느낌이 좋았다. 이리 뒤집어져도 저리 뒤집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마치 내가 오뚝이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엄마가 되고 아이들이 방방이 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부러울 때가 참 많다. 나도 들어가 같이 뛰어들고 싶은 맘이 끓어오른다.      

방방이가 타고 싶은 날, 훌쩍 커버린 마음 때문에, 어쩌다 되어버린 어른이라서 받아 주는 곳이 없을 때, 그림책을 펼쳐보자. 이갑규 작가의 <방방이>     


아이는 방방이 속에서 뛰어놀다가 아빠를 보더니 손짓한다. 망설이던 아빠는 올라가더니 재밌어 보이는 아이들을 따라 한다. 그리고는 흥분해서 아이들이 날아갈 만큼 방방이를 맘껏 구른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방방이를 나오고, 이를 본 어른들은 점점 화가 치민다. 아빠를 나무라기 위해 방방이를 들어선 어른들은, 갑자기 함께 구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컷 즐기며 마치 어린이처럼 방방이를 탄다.

     

오랫동안 방방이에서 내려오지 않은 어른들 모두 역시 한때는 어린이였다. 그런데, 어른이라는 옷을 입고 난 후부터는 진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사는 듯 하다.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느라, 모름지기 아빠라면 이래야지, 엄마라면 이래야지 하는 고정관념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며 산다.      

늘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며 살 순 없겠지만 가끔은 어린이처럼 놀아보면 좋겠다. 내일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고, 그냥 어린이처럼 그 순간순간을 놀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좋겠다.    

  

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방방이를 타며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방방이를 타며 잠깐 동안 후끈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림책 속 어른들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외면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어떤 문제든 맞이한다면 풀지 못할 숙제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소꿉놀이를 한다. 지금 나의 역할은 엄마이자 작가다. 

즐거운 마음으로 놀아본다. 

어린이처럼 재미있고, 순수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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