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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26. 2021

엄마, 그걸로 병원가면 돈 버리는 거야. 그냥 자면 돼

나만의 슬기로운 주치의-『초록거북』

"왜? 엄마 어디 아파?"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딸이 물었다.

"응 이상하게 여기 관자놀이 있는 곳 있지, 여기 말이야. 여기가 갑자기 찌릿했다가 또 괜찮아졌다가 그러네."

눈을 크게 뜨며 눈썹에 힘을 잔뜩 주고는 이야기한다.

"어어, 나도 그런 적 있어 엄마. 갑자기 아픈 거 그거~"

고작 만 9년 산 네가 관자놀이가 얼마나 아파봤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라지만, 그래 진짜 아파봤겠지만, 엄청 아는 체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야~ 너 나이에 여기가 엄마처럼 아프면 정밀검사받아봐야 해."

"아니야. 나 진짜 아픈 적 있었어."

10살이면 아플 건 웬만큼 다 아파봤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딸.

진지하게 말하는 딸아이의 표정에 빨려 들어가 나는 다시 물었다.

"아... 진짜 아파. 여기 아프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

딸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야기했다.

"엄마, 그걸로 병원 가면 돈 버리는 거야. 검사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와. 내가 아는데, 그냥 자면 돼."

진지하게 하는 말이 웃기기도 하고 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해서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잠자는 것만큼 보약이 어디 있을까? 사실, 나는 피곤하면 잔다. 그럼 몸이 개운해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아픈 곳도 사라지곤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삼십대라(음.... 이 처방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 방법이 먹힌다. 인생 좀 살아봤다는 투로 그렇게 말하는 딸아이 덕분에 머리 아픈 것도 잊을 정도로 웃어댔다. 그러다 갑자기 또.

"아......"

"엄마, 한 가지 더 방법이 있는데, 그럴 때는 아픈 곳을 더 아프게 눌러. 여기를 꾸욱 이렇게. 내가 아플 때마다 쓰는 방법이야. 이렇게 하면 별로 안 아픈 것처럼 느껴져."

아이의 엉뚱하면서도 어찌 보면 맞는 것 같은 처방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너 명의인데. 엄마 전담 명의!"


그날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다시 관자놀이가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인상을 쓰는 것 대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히히히 실소를 터뜨리며 지그시 머리를 부여잡고 누르는 나를 발견했다. 전담 주치의 덕분에 병원을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는 참 보물 같다. 어릴 때는 온갖 애교와 눈빛으로 사랑을 마구마구 쏘아준다. 엉덩이를 흔들고 볼을 비비고 타액을 묻혀 사랑을 표현한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 그런 호사는 점차 받기 어려워진다. 대신 더 포근한 담요를 건네어 나를 꽁꽁 사랑으로 감싸준다. 생각지도 못한 말로 깊은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어설픈 지식으로 엉뚱한 이야기를 건네 웃음을 터뜨리게도 한다, 가끔은 감동 섞인 말들로 나를 촉촉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웃겨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던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는 나를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준다. 내가 하던 역할을 이제는 아이가 해준다.



그림책 초록 거북에도 아빠와 아들이 나온다. 늘 아빠를 기다리던 아들과 그런 아들의 행복을 위해 바깥세상에서 애쓰던 아빠, 그런데 언젠가부터 둘의 위치가 바뀐다. 늙고 힘이 없어져 자신의 보살핌이 필요해진 아빠를 위해 아들은 늘 함께 있어줄 거라고, 발이 되어 줄거라 말하며 기꺼이 등을 내어준다. 아빠 거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거나, 다리가 갑작스레 아프다고 하면 그건 피곤해서 그렇다며 얼른 푹 자라는 처방을 내렸었다. 나도 그렇게 처방을 받고 자랐기에. 그리고 찌릿찌릿 아픈 곳이 있으면 그곳을 탁탁 탁탁 손으로 두드리면 조금 나을 거라고 이야기 해주곤 했었다. 우리 엄마가 내게 말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했던 것을 보고, 아이는 나에게 똑같이 한다. 맞든 틀리든 간에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을 몸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기억해 가장 유능하고 진심을 담은 나만의 슬기로운 의사가 되어준다.

아직은 아이를 나의 등에 태우고 있지만, 아직은 내가 아이의 등에 올라타지는 않았지만, 또 영원히 등에 올라타지 않고 살아가는 게 나의 인생 목표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힘이 없어지면 나도 아빠 거북처럼 아이의 등에 기대게 되겠지. 그때 더 많은 것들을 함께 보고,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지금 나의 아이와 같은 곳을 보고,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또 적당한 거리에서 그저 기다려주어야겠다. 아빠 거북이 서투르지만 인내와 용기로 아기 거북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나도 그래야겠다.

조급해하지 않고 꼭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그림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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