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헌이 만들어준 빈틈으로 이준서 선수와 박장혁 선수가 스며들면 좋겠는데요. 황대헌 선두입니다.
세 바퀴 남았습니다. 황대헌 좋습니다. 황대헌이 팔을 풀었습니다. 두 바퀴 남았습니다.
황대헌 선수, 마지막 한 바퀴 마지막 한 바퀴, 황대헌 황대헌 황대헌 와~~~~~~~~~~~~~~"
지난 2월 10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 경기를 보다가 숨이 넘어갈 뻔했다. (맘 놓고 응급실도 갈 수 없는데 응급실 갈뻔했다는) 배성재 아나운서를 따라 나도 그렇게 들숨날숨을 길게 내쉬었다. 공정하지 않은 심판 판정으로 아쉽게 메달의 기회조차 놓쳐버린 우리 선수들이 당당하게, 다시 우뚝 서는 자리였다. 어떠한 편파 판정도 할 수 없도록 완벽했던 경기는 우리에게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너무너무 행복함과 동시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경기를 시청할 때마다 제발 제발 제발 하며 숨을 참느라.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하고 신경은 바짝 곤두선다. 경기 시작 전 아이들이 조금 장난을 치기라도 하면 '그만!!!'하고 소리지르기 일쑤다. 미간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입술은 아무리 아밀라아제를 공급해도 바짝 말라 쩍쩍 갈라진다. 이게 이렇게도 긴장할 일인가... 내가 출전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보면 황대헌 선수의 먼~ 사돈의 팔촌이라고 오해할 법하다.
이러한 증상이 비단 쇼트트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루지와 스켈레톤 같은 큰 부상을 염려해야 하는 경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선수들이 힘차게 달리기를 하고는 썰매에 안착하는 순간,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흐읍 아~ 아... 윽... 악! 휴~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다칠 뻔 한 순간에는 비명이, 빠른 기록으로 통과하는 순간에는 감탄이 그리고 도착점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빠져나온다. 선수와 나의 연결고리라고는 '국적'하나밖에 없는 사이인데, 그런 나도 이런데,,, 선수들의 부모님은, 가족들은 이 경기를 어떻게 지켜볼까? 과연 볼 수나 있을까? 보지도 못하고 안 보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겠지...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가 되고 보니 올림픽도 달리 보인다.
우리나라 선수가 아니더라도 이 증상은 지속된다. 물론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면 그 감정은 더 격해지지만 심지어 국적마저도 같지 않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경기에 임할 때에도, 출발 신호가 울리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가 있는 힘껏 들이마셔 일시정지를 한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면 함께 운다.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4위를 차지한 숀 화이트 경기를 보며 나는 펑펑 울었다. 은퇴를 앞둔 마지막 경기에 임하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간절했기에 저렇게도 눈물을 흘리는 걸까? 억지로 눈물 흘리려 하지 않아도 어느새 나의 눈에도 37도씨의 미적지근한 물이 차오른다. 그리고 마음도 뜨뜻하게 달군다.
올림픽의 '올'자만 들어도 왜 눈물이 나는 걸까? 4년간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을지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꾹 참고 버텨낸 선수들이 참 멋지기에, 어쩌면 나도 나만의 올림픽에서 작년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기에. 그런 마음들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에 눈물이 나는 거겠지.(사실 마흔도 안되었는데 갱년기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냥 눈물이 난다는...)
순위가 낮아도, 성적이 좋지 않아도, 1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에 진심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자꾸 요동친다. 내일도 심장이 쫄깃쫄깃 쫀드기가 되겠지. 이마의 미간에 주름살이 졸졸졸 골짜기를 만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