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선거

선거에 진심인 우리 아빠가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by 책닮녀

가끔은 딸에게 전화도 하는 아빠지만, 그건 주로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다. 아이들 얼굴이 보고 싶고 딸 목소리도 들을 겸, 적적한 날에는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그런데 어제는 대낮에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다. 절세미남이라고.(저희 아빠가 예전에 얼굴로 한 가닥 했습니다. 엄마께 농담으로 빈털터리 지갑을 주웠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요^^) 이럴 때면 보통 집에 일이 있거나, 나에게 꼭 물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오는 전화가 많았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전화했었네?"

"그냥, 딸내미 잘 있나 전화했지. 사전 투표하러 가나?"

아, 맞다. 선거시즌이었지. 선거시즌에는 멀리사는 나에게 언제나 전화가 걸려온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확고한 정치 색깔을 가진 아빠 밑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선거는 1번 아니면 2번만 찍으면 된다고 교육을 받아왔다. 왜 그런지 몰라도 아빠는 완벽하게 하나의 당에 충성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그 당과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가족이 출마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말이다.


"아이고, 왜 전화했는지 알겠네!!"

나는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관계없이, 늘 '네'라고 대답하며 아빠의 뜻을 존중해 준다. 그게 아빠의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비록 투표는 내 맘대로 하지만. (그게 민주주의 원칙이니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해봅니다요)

"우리 둘째 딸은 아빠가 말 안 해도 알제? 아빠 시킨 대로 안 하면, 아빠가 더 아프다."

"알지 알지. 근데 왜 아빠가 아파요?"

"아빠 지금 PCR결과 기다리고 있다."

"뭐라고? 왜? 어디서?"

갑작스러운 아빠의 말에 목이 타들어갔다. 연세도 많으신데, 진짜 코로나면 안 되는데, 맘이 조마조마했다. 코로나 이후 가는 곳도 별로 없고, 가끔 병원 가는 게 전부인 아빠가 어디서 걸렸을까... 자가항원 검사가 틀렸을 거라며 간절히 바랐지만,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오미크론이라는 놈이 친정까지 친히 방문을 한 게 맞았다. 엄마에게 옮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부산에 있었어도 격리로 인해 들여다보지도 못했겠지만, 괜히 멀리 있으니 마음이 짠했다. 미처 신경 써드리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빠, 괜찮아요?"

"괜찮다~ 목만 좀 아프고 열도 없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제보다는 조금 상태가 안 좋은 듯했다. 혹시나 열이 나거나 증상이 심해지면 얼른 병원에 가라고 신신당부하고 끊으려던 찰나, 아빠는 또 선거이야기를 꺼내셨다.

"몇 번 찍는지 알제? 잘 찍어라~"


마음만은 이미 당원, 아니 선거 대책 위원회장에 버금가는 우리 아빠. 나는 코로나라 그 좋아하는 투표도 못해서 어떡하냐며 아빠를 걱정했다. 그런데 아빠는 태연히 말씀하셨다. 코로나 확진자들만 투표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다며 사전투표 날 5시에 가도 된다고 걱정 말라고. 국민의 권리를 코로나로 뺏을 순 없으니 당연히 마련된 처사였다. 그렇지만, 그 아픈 몸을 이끌고 꼭 투표하러 가겠다는 아빠의 불타오르는 열정을 보니, 선거가 코로나도 이기게 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1.jpg



아빠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의 투표는 때로는 아빠와 겹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웃하기도 하고 때로는 멀어지기도 한다. 아빠의 주문대로 쭈욱 찍고 나왔던(지방선거를 말합니다요) 나의 첫 투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둘째 딸만큼은 아빠가 원하는 대로 찍는다는 믿음을 갖고 계신 듯하다. 그 믿음이 아빠가 코로나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면야 끝까지 효녀 코스프레를 할 작정이다. 선거 덕분에 코로나를 이겨내고 계신 아빠께 나도 힘이 되어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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