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말이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10대에는 젝키의 해체를 온몸으로 격렬히 받아들이고, 20대에는 꿈을 찾겠다고 낙방과 도전 사이에서 후덜 거리는 외나무 줄다리기를 하더니. 30대에는 처음 단 엄마라는 명찰이 부담스러워 겔겔 거리고 40의 문턱 앞에 와서야 한 숨 돌리고 있는 나다.
그런 나에게 온 문자 한 통.
"엄마에게 전화해봐. 아무렇지 않게."
언니의 짤막한 말과 마침표를 보니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역시나 아빠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는 것. 얼마 전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으로 일주일 내내 집에 혼자만 계셨던 아빠는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119를 불렀단다. 코로나 격리 기간이 아직 하루 남았기에 병원에서 쉽사리 받아주지 않았고, 어렵사리 소규모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 괜히 말하지 말라고 엄마가 단속을 하는 통에, 엄마에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하라고 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도 자식이니 알아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깜짝 놀랐지만, 코로나 때문에 하루 종일 누워 지냈을 연세 많은 아빠가 그저 잠깐 아프신거겠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덜컥 무서워 눈물이 날 뻔했지만, 억지로 슬픔을 밀어 넣었다. 언니는 괜찮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고, 나는 또 밥하고 씻기고 청소하는 나의 일상 덕분에 조금 잊고 있었다. 몇 시간 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받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역시나 그랬다. 갑자기 상황이 나빠진 아빠는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이라는 게 늘 상황의 최악의 경우까지 말해주는 거지만, 정말 최악의 경우 이송 중 앰뷸런스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안내를 들으니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부산과 서울이 남극과 북극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언니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면 언니가 울테고 그럼 마치 아빠가 진짜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알겠다고만 하고는 울음을 삼켰다. 전화를 끊고 뒤돌아선 내게 왜 그러냐는 신랑의 한마디에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빠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차마 뱉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아빠에게 못해드린게 많이있기에, 보여드릴게 많이 있기에,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왜 우리 아빠는 저럴까? 엄마에게 조금 다정할 수 없을까? 조금 기다려주면 안 될까? 화내지 않으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를 생각하면 보수적이고 다혈질이며 고집이 세서 답답한 느낌만 들었다. 시집을 멀리 오면서 더 이상 아빠와 부딪힐 사소한 일이 없어지자 사이가 좋아졌을 뿐. 사실 우리 아빠는 옛날 사람에 고집 센 할아버지가 여전하다. 그런 아빠가 일흔 넘어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셨기에 나는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다고 해도 그리 슬프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고집세고 말이 잘 안통하는 아빠가 엄마보다 더 오래 살면 아빠도 우리도 모두 고생할 거라며, 나이 많은 아빠가 먼저 떠나는 게 좋은거라며 으레 말해왔었다. 그랬는데. 아빠가 죽음을 맞이 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지만, 큰 일이 난 거라 걱정할까 봐 참으려 해 봤지만 나는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북극에서 남극으로 떠나는 것보단 가까운 부산, 그깟 부산 가면 되지만 가봤자 아빠를 만날 수도 없고, 내가 치료해 줄 수도 없고, 아빠의 곁을 지켜드릴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저 평상시처럼 아이들 보며 밥을 차리고 빨래를 널고, 그저 병원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병상에 온 기운이 빠져나갈 때 즈음, 신랑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출장에서 식사를 함께한 사람 모두 확진을 받아 검사를 진행했더니 신랑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부랴부랴 집안에서 격리를 하고, 온갖 소독약을 집에 뿌리고 닦았는데, 다음날 둘째가 머리아픔을 호소했다. 40도에 육박하는 열. 확진이었다. 지금은 아빠와 같은 방에 들어가 격리를 하는 중이다. 열은 많이 나는지, 괜찮은지, 잠은 잘 자는지 걱정되지만 역시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밥을 차리는 일 밖에는. 그래서 열심히 밥을 차리고 열심히 소독을 하고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중이다.
왜,,, 나쁜 일은 항상 몰아서 들이칠까.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도 많을 테지.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애써 나를 다독여본다. 정신없이 들이치는 나쁜 소식에 휘갈겨 붉어진 뺨은 이제야 살구색 피부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빠는 다행히 조금씩 회복을 하고 있고, 신랑은 거의 통증에서 벗어났다. 아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조금씩 들려오는 다행인 소식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처럼 좋은 일도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좋겠다. 비록 그다음에 또 비보를 듣는다 하더라도, 한번 즈음은 좋아서 춤을 출 정도로 좋은 일이 많이 오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