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지음/마누스
필사를 하지 않는 저로서는 필사 그거, 타인의 검증된 문장을 천천히 써가며, 이거 마치 내가 이런 훌륭한 문장을 썼다, 아니, 이런 훌륭한 생각을 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착각, 자기만족에 빠지게끔 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기도 한 것입니다.
부러 '필사'에 대해 최대한 나쁘게 말해보았습니다만, 실제로 이렇게 까지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안 해봐서 모르는 겁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필사? 저는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p.33)
전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관종이었다면, 글을 쓰기 시작하며 우리는 슈퍼 관종이 된달까요. 그렇잖아요? 그러니 매일매일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요. 옛말에 울다 웃으면 똥꼬에 털이 난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게 사실이라면 글을 쓰는 이들은 모두 다 수북할 것입니다. 나는 아니거든, 하고서 빠져나갈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정서적 안정을 꾀하자(p.82)
아무튼 예로부터 우리에겐 품앗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무명작가들이 돈 만원 정도 써서 서로의 책을 사서 봐주는 거, 비록 망한 판이라도 거기에는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거 분명 자기 위안이고 합리화인 거 같긴 합니다만.
『작가의 목소리』, 이경 -동료 작가와의 책 품앗이(p.145)
글쓰기 강사들이 말하듯, 분명 책을 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일이 잘 풀릴 겁니다, 하는 개똥망 같은 긍정의 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책을 낼 수 없을 확률이 훨씬 큽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확률이 훨씬 큽니다. 작가가 아닌 평생을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갈 확률이 훨씬 큽니다. 자신감이 하락하여 어쩌면 삶 자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작가가 되면 좋은 점(p.209)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얻고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고,
주어와 서술어를 조합하고, 문장과 문단을 이루어,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나오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