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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r 09. 2022

동굴 보이스 들리시나요? 『작가의 목소리』

이경 지음/마누스

진짜 이번 책은 내가 1등으로 보고 후기를 남길 테다, 이경 작가님은 나의 인생 작가니까, 인생 독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한여름 운동장 열 바퀴 뛰고 온 후 벌컥벌컥 맥주 들이켜듯 책을 읽었다. 원래 술술 넘어가는 글이니까. 그리고 글을 써야지 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어디 내 책 후기 올라온 것 없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매일 같이 검색을 하고, 작가의 본분인 홍보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경 작가님 덕분에 다른 후기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이런, 늦었군. 김이 빠져서 며칠 미뤄두었다.


그럼에도 이경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어이, 자네 아직 안 늦었다네, 일단 책을 사주었으니 좋은 독자임에 틀림없고, 총총이라는 끝인사까지 읽어주었으니 더 좋은 독자이고, 거기에 sns에 글을 올린다면 정말 내가 절을 해줄 터이니, 어서어서 키보드 첵첵 해야지' 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드디어 쓴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지음/ 마누스 출판사



1장 작가의 헛소리

작가님의 헛소리를 좋아하는 1인으로서 아주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로 시작해서 '네?'로 끝나는, 노래로 치면 후렴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어, 더욱 수월하게 흥얼거리며 읽을 수 있었다. 인상 깊은 부분을 남기자 하면 책 한 권을 몽땅 (작가님의 그다지 내키지 않아 하는) 필사를 해야 할 판이지만, 먼저 1장에서 꼭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필사에 관한 작가님의 의견이었다. 필사, 그게 과연 글쓰기에 도움이 될 일인가?


필사를 하지 않는 저로서는 필사 그거, 타인의 검증된 문장을 천천히 써가며, 이거 마치 내가 이런 훌륭한 문장을 썼다, 아니, 이런 훌륭한 생각을 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착각, 자기만족에 빠지게끔 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기도 한 것입니다.
부러 '필사'에 대해 최대한 나쁘게 말해보았습니다만, 실제로 이렇게 까지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안 해봐서 모르는 겁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필사? 저는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p.33)


글쓰기를 잘하려면 필사를 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매일 베껴쓰기 챌린지에 임했던 적도 있다. 당시에는' 아 그렇구나, 오~ 이렇게 표현하다니' 했는데 돌아보니 나에게 남는 건 뭐 오동통한 살에 조금 도드라져 보이는 팔의 힘줄이라고나 할까? 작가가 한 이야기를 조금 더 기억하고 싶어서, 그 문장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다가오는지 느껴보고 싶어서 필사를 하는 건 찬성한다. 꾹꾹 눌러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곱씹어 볼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필사라는 행위가 내 글을 잘 쓰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더라라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카더라에 휩쓸려 '난 필사 반댈세'라고 손을 들지 못했던 것. 그런데 내가 존경에 마지않는 작가님이 먼저 이렇게 사이다 같은 아니 사이다에 맥주도 좀 탄 듯한 발언을 날려주시니, 어휴 오늘은 그 핑계로 싸맥을 한잔 하기는 해야겠다.



2장 작가의 쓴소리

아니 이렇게 쓴소리를 하실 거면 저보고 겔뽀스라도 하나 먹고 읽으라고 말을 해주시던지라고 말할 뻔했지만, 중간중간 속 쓰림 마저도 잊어버리게 할 만큼 허허허 웃어넘길 곳이 많아, 역시 '센스쟁이 글쟁이 이경 작가님'이라고 생각했다. 저의 인생 작가님이 하는 단디 하라는 잔소리는 달게 들어야지 암암.


전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관종이었다면, 글을 쓰기 시작하며 우리는 슈퍼 관종이 된달까요. 그렇잖아요? 그러니 매일매일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요. 옛말에 울다 웃으면 똥꼬에 털이 난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게 사실이라면 글을 쓰는 이들은 모두 다 수북할 것입니다. 나는 아니거든, 하고서 빠져나갈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정서적 안정을 꾀하자(p.82)


'앗, 나는 정~말 아니거든요' 하고 발뺌해보려다가, 아마도 이게 사실이라면 바야바(바야바를 아실까요? 궁금해서 네이버에 쳐보신다면 임산부와 노약자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로 변했을 내 모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그래, 나는 관종 맞다. '나 이렇게 살고 있으니 좀 봐달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말이야. 이 말 근사하지 않은가 말이야. 고개 좀 끄덕여 달란 말이야. 고개가 아프면 손가락이라도 꾸욱 눌러 마음을 표현해도 된단 말이지. '하고 계속 구걸하는 슈퍼 관심종자. 이렇게 똥꼬로도 세련된 표현을 하는 이경 작가님이 질투가 나려고 하는데, 아니 아니, 지나친 질투는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작가님의 쓴소리를 이온음료에 탈탈 털어 넣어 몸에 흡수시켜 본다. 아, 2%로 부족하네. 정서적 안정을 위해 맥주에 털어 넣을 걸 그랬나 보다.



3장 작가의 목소리

드디어 진짜 목소리가 나왔다. 헛소리도 들어주고 쓴소리도 달콤한 척 들어주었으니 , 이 목마른 작가 지망생에게 제대로 된 동굴 보이스 정도는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작인 『난생처음 내 책』 출간 후 출연한 유튜브에서 작가님 목소리를 틀림없이 들었는데도 기억이 안나는 거 보면 일단 동굴 보이스는 아니지만, 뭐 글에서 느껴지는 에코라고나 할까? 찐함 울림이 있다.


아무튼 예로부터 우리에겐 품앗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무명작가들이 돈 만원 정도 써서 서로의 책을 사서 봐주는 거, 비록 망한 판이라도 거기에는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거 분명 자기 위안이고 합리화인 거 같긴 합니다만.

『작가의 목소리』, 이경 -동료 작가와의 책 품앗이(p.145)


전통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 어쩌면 "작가님? 작가님!(은근 홍보 중입니다, 이경 작가님의 첫 작품) 제 책도 나중에 사주실 거죠?"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래, 돈 만원 정도는 Flex'외치며 기꺼이 내 책을 사주시겠구나. 감춰진 비주얼만큼이나 아름다움이 마구 묻어나는 작가님이구나. 어쩌면 작가님의 동굴 보이스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는 생각에 실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데, 그럼 뭐해. 책이 없는데, 헙, 작가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잠깐 적금 부으셔도 됩니다. 요즘은 중간에 해지해도 맥주 한 캔 값도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요.



4장 작가의 단소리

분명 작가의 단소리라고 쓰여있는데 여전히 쓴소리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럼에도 개똥망 같은 긍정까지는 아니지만 쥐똥망 같은 희망의 빛이 깜빡인다고 할까. 작가님의 단소리를 듣고나니 달달해지기보다는 단단해진다.


글쓰기 강사들이 말하듯, 분명 책을 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일이 잘 풀릴 겁니다, 하는 개똥망 같은 긍정의 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책을 낼 수 없을 확률이 훨씬 큽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확률이 훨씬 큽니다. 작가가 아닌 평생을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갈 확률이 훨씬 큽니다. 자신감이 하락하여 어쩌면 삶 자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작가가 되면 좋은 점(p.209)


'아니, 평생 작가 지망생이라뇨! 저번 책에서도 그러시더니, 브런치에서도 그러시더니, 계속 팬심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시기예요?'라고 묻고 싶은 맘도 일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확률이 훨씬 크다는 걸 개미의 발톱만큼은 경험도 해봤기에(근데 개미의 발톱이 있었나? 작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비판적인 사고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 의심해 보는 걸 실천 중입니다요), 고개가 끄덕여지고 작가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작가 지망생으로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지만, 그럴 때면 쓰기 1원칙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쓴다' 만큼은 잘 지키고 있음을 믿어본다. 엉덩이로 누르는 나의 육중한 무게를 믿고, 째려보기의 힘을 믿으며,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작가님의 지갑을 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작가의 단소리를 가슴에 새겨 더 단단하게 글을 써야지.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얻고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고,
주어와 서술어를 조합하고, 문장과 문단을 이루어,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목소리』, 이경 -나오는 글




내 안의 숨 쉬는 '작가의 목소리'가 언제 가는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하나의 글을 넘어 한 편의 더미로 엮어 지기를.

오늘도 용기를 얻어 글을 써 봅니다.

얼른 책 덮고 글 쓰러 가라고 하셨으니 ^^이만 물러갑니다.








*작가님, 4번째 책 진심으로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5번째 음악 에세이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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