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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pr 09. 2022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이제는 딸을 기다리는 엄마

그림책 『엄마 마중』속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어

그림책 『엄마 마중』에는 아이가 한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자신의 키만큼 높은 턱을 영차 올라서서는 하루 종일 코가 빨개질 정도로 묵묵히 서있다. 그림책의 장면은 한 장씩 넘어가지만 어쩌면 몇 날 며칠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 한구석이 저릿했다.



오랫동안 맘을 다해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껌딱지였다. 정말이지 심각할 정도로 엄마만을 밝히는 아이였다. 학교를 다녀와 엄마가 집에 없으면 처음에는 글썽이기만 하던 눈물이 차고 넘쳐 어느덧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곤 했다. 사실 엄마가 별로 자리를 비운적이 없었음에도, 가끔 장을 보러 나갔다가 늦어지거나 내가 생각보다 일찍 하교를 하게 되면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고, 연락하기가 어려웠기에, 나는 어김없이 눈물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한 번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였다. 엄마, 아빠가 미리 설명하고 외출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자 불안했던 나는 식탁의자를 베란다로 끌고 나와 의자 위로 올라서서 엄마가 어디쯤 오나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베란 다 창문에 기대어서는 잘 보이지 않아 창문을 열고 방충망에 이마를 한 껏 기대어 바라보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중 엄마의 모습이 보이자, 의자를 원래대로 가져다 놓고는 태연한 척 내 방에 들어가 있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던 내 맘을 숨기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내 이마가 새까맣게 되었다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아차 싶었던 나는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엄마는 방충망에 기대어 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셨다. 그리고는 포근히 안아주셨던 그때의 체온이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이마가 새까맣게 된 줄도 모르고, 눈물을 머금고 엄마를 기다리던 그 아이는 어느덧 자라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는 내 삶을 살아내느라, 어느덧 엄마에게 연락조차 뜸한 딸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엄마가 나보다 상대적으로 더 바쁜 일이 없어진 요즘은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볼일 보러 나갔던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이의 맘을 알기에, 기다리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안 와도 된다고 늘 말씀하시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맘을 알기에 괜히 죄송한 맘이 든다.



언젠가 오늘 하루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엄마 아빠께 서프라이즈 하러 부산으로 떠나고 싶다고 꿈꿔본다. 그리 멀지도 않은 그곳에 갈 마음을 왜 먹지 못하는 건지. 아이가 크고 나에게 여유가 생길 때까지 엄마, 아빠가 기다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를 만나 빨간 막대 사탕을 들고 걸어간다. 원작 소설에는 빠져있던 장면을 그림책 작가인 김동성 작가가 그려 넣은 장면. 그 장면이 참 좋다. 나도 엄마가 좋아하는 쑥떡을 양손 가득 들고 나란히 발맞춰 걸어가는 상상을 해 본다.



지금 당장 그 그림처럼 달려가지 못하지만,  핸드폰을 열어 다이얼이라도 눌러보아야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만큼 누군가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꾸욱~ 통화버튼을 눌러야지. 그래,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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