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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r 27. 2022

1 더하기 1은? 2일까? 창문일까?

『하나와 하나가 만나면』

1 더하기 1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다면 대부분 2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물으면, 창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더 특별한 대답을 하는 그림책이 있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면』이라는 그림책. 그림책 속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면 둘,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야.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엄마, 아빠, 그리고 나.
그래서 하나와 하나가 만나면 셋



하나와 하나가 만나면 당연히 둘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셋이 되고 넷이 되고 열이 되고 백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림책 속에 담았다. 봄바람과 나무가 만나서 '봄바람, 나무, 꽃'이 되고, 때로는 흰 구름과 키 큰 나무가 만나 '모자를 쓴 거인(모자 모양의 구름이 나무에 걸린 듯한 모습)'이 된다.



우리 집도 그렇다.


처음 남편과 내가 만났을 때는 하나였다. 지금의 남편은 나와 6살의 나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나에게는 3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남편과 내가 우리 집을 찾은 건, 내 나이 26살. 그러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내 인생 리즈시절이라고나 할까? 그런 누구에게 보내도 아까울 둘째 딸이, 첫째 딸도 안 간 시집을 가겠다고, 나이 꽤 먹은 시커먼 남자 친구를 데려왔으니, 나의 부모님은 턱 하니 허락을 해줄 수 없었다. 그래도 딸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해주는 부모님께서는 하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셨지만 그 사이 시간을 좀 벌어보자고 1년 뒤로 날짜를 잡으셨다.


그때부터 나는 남편과 거의 하나였다. 밤에 잠만 따로 잘 뿐, 아침 출근 시간이 되면 남편은 나의 집 앞에 차를 대기시켰다. 따뜻한 커피는 없었지만(사실 그때는 따뜻한 커피 따위는 필요 없었다. 따뜻한 손길과 더 따뜻한 입술이 있었으니까^^;;)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나를 데리러 왔고, 직장에 데려다주었다. 참고로 남편의 집에서 나의 집까지는 40분 남짓 걸렸고, 나의 직장은 나의 집에서 10분 남짓의 거리에 위치했다. 사랑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그리고 나의 직업 특성상 늘 7시를 넘겨 퇴근했기에 직장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남편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야근만 하는 남편인데 그 시절에는 어찌나 칼퇴를 하셨는지. 맛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헤어지기 아쉬워 시간을 붙잡고 사랑을 속삭이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헤어지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의 집 앞에 비상등을 켠 그때는 훤칠해 보였던 내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에서 일을 하는 10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늘 한 몸이었다. 그렇게 하나 더하기 하나를 했더니 하나가 나왔다.



그런 우리가 결혼을 했더니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었다.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붙어 있던 커플이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집에서마저 그렇게 붙어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이미 서로의 불같은 사랑이 조금 수그러 들기도 했고, 슬기로운 결혼 생활(앞으로 같이 5, 60년은 살테니까요....)을 위해서도 각자의 시간이 늘렸다. 나는 요리를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드라마에 빠지곤 했고, 남편은 예능을 보거나 게임을 하곤 했다. 같이 지내는 시간과 공간은 더 늘어났지만, 그 안에서 따로따로 각자의 영역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이 되는 것도, 서로의 것을 따로 또 같이 즐기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결혼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하나와 하나가 만나 셋이 되었다. 6월의 때 이른 폭염과 함께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우리를 찾아왔다. 남편과 내가 만나 '남편, 나, 아이' 이렇게 셋이 되는 순간이었다. 둘째 에게는 미안하기도 하지만, 첫 아이를 낳을 때의 감동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예정일이 일주일 남은 목요일 저녁, 남편과 부추김치에 삼겹살을 거하게 먹고 누워있는데, 차갑게 흐르던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속옷을 갈아입었었다. 이내 또 흐르던 차가운 액체 때문에 병원에 전화를 걸고, 갑작스레 떠나게 된 출산행. 그리고 몇 시간 뒤 아이와의 만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던 보석 같은 눈망울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하나가 되고, 둘이 되어서 좋았는데, 셋이 되고 보니 곱절로 좋았다. 둘일 때는 차마 느낄 수 없었던 꽉 찬 느낌. '이런 게 행복이구나'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셋이 되면서 내 영혼이 탈탈 털리는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남편이 미운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셋이 되는 건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넷이 되어도 좋을까? 홀수는 싫으니까. 학창 시절에도 세 명씩 다니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나는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셋이서 친하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둘은 아주 가까워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기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다. 셋이 친해지면 어쩔 수가 없었다. 재미있고 즐거운 순간은 함께 했지만, 조금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는 왠지 모르게 나는 혼자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짝수를 좋아했다. 친구를 사귈 때면 일부러라도 짝수를 만들었다. 대학시절에도 짝수를 만들어 친해졌는데, 덕분에 진짜 마음을 터놓는 친구도 만들 수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도 짝수가 좋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여나 나와 남편이 먼저 생을 마감하고 나면 혼자 남을 마지막 하나가 외롭지 않도록 하나를 더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와 하나가 만나 넷이 되었다. 나와 남편, 딸 그리고 아들까지. 넷이 되고 나니 셋보다 더 좋다. 다섯인 집은 다섯이 더 좋다고 하겠지? 그래도 그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으리다(이번 생에서는 애는 그만!) 나는 짝수가 좋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하나와 하나가 만나 하나도 되고, 둘도 되고, 셋도 되고, 넷도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또 열도 되고, 백도 되겠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수셈,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 질문에도, 정답 대신 '색다른 답'이 존재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인생이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백만일 수도 있다는 걸. 그렇기에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감사와 평화를 놓치지 않고 챙겨가기를 바란다.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좋은 일이 일어날 테니까.




그림책 마지막 장면에 엄마품에 쏘옥 안기면 하나가 된다라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오랜만에 우리 가족을 하나로 만들어 보아야겠다. 아이들을 꼭 안아주어야지. 남편까지 보듬어주기엔 조금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할 테지만, 오늘 연애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쓰며 떠올렸던, 하나였던 감성을 다시 상기시키며, 꼭 안아주련다. 하나가 하나와 만나 더 큰 하나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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