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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12. 2022

잊지마세요.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그 많은 다정한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습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지는 미국령의 하와이. 신랑과 나는 프리토킹에 매우 약한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 습득자로 특히 나로 말할 것 같으면...중학교 1학년에 영어를 시작한 사람으로 어떤 듣기 평가에서도 만점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 흔한 토익 시험에서도 LC(리스닝) 점수가 RC(리딩)점수보다 형편없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문장 형식 몇가지는 머릿속에 박혀있어서 말을 하는 건 내가 하고, 듣고 해석해주는 건 신랑이 맡아서 했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구나 (이때는 별게 다 천생연분이었네요;;;)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이 합을 맞춰 신기하게도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봐야 호텔에서, 근처 식당에서 고작 몇마디 하는 게 전부였고, 나머지 관광일정은 가이드가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패키지 일정 중 추가 선택했던 유람선 저녁 만찬에 가게 되었다. 당연히 우리의 대부분의 일정 처럼 많은 한국인 신혼 부부가 있을거라 생각하며(당시 하와이는 신혼여행지 1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신혼부부들이 비슷한 호텔에서 묵었다) 무작정 떠났다.


어머, 그런데 이게 웬걸.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한국인은 내 옆에 있는 머리 시커먼 사람 말고는 한명도 없었다. 관광의 도시 답게 하와이를 즐기기 위해 떠나온 전 세계 사람들이 끊임 없이 늘어서 있었다. 편하게 즐기려 온 유람선 항해 파티인데,,, 너무 많은 원어민을 만나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비단 입뿐만아니라 몸도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신랑과 마주보고 앉았고, 내 양옆으로는 키도 크고 얼굴도 큰, 파랗고 푸른 눈동자도 큰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불편한 저녁 식사를 하던 와중, 옆에 앉아있던 한 중년 외국 남자가 다행히도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익숙한 질문을 먼저 던져주었다. 다정한 미소를 띄고서는. 어디에서 왔냐는 교과서에 나오는 질문을 시작으로(그때는 주입식 영어공부가 고마웠다는;;)우리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영어로 나누기 시작했다. 보디 랭귀지는 전 세계 공통 언어가 아니었던가. 손짓 발짓 해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중년 외국남자는 희한하게도 신랑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둘은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 중간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나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언어의 장벽이 분명 존재했지만 마음의 장벽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정한 얼굴로 질문을 먼저 던져준 그들 덕분에 우리는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의 어깨의 손을 올리고 함께 춤을 추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기 전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한 컷 찍었다. 한국에 돌아가 메일을 보내 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리고 진짜 메일을 주고 받았었다. 비록 단 한번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하와이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나는 하와이하면 다정한 느낌이 꽉 차있다.


     


그림책 '다정한 사람은 어디에나'에는 37개국의 나라가 나온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각기 다른 기후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한가지 동일한 것은 어디에나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어느집에나 다정한 사람은 한명쯤은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미국에도, 팔레스타인에도, 시리아에도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에도 다정한 사람이 애를 쓰고 있다.


이 책은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는 브라이언이라는 아이에게 세계에는 다양한 곳이 있고 그 곳에도 다정한 사람이 있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그리고 어느곳에나 다정한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다.



믿는 만큼 얻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내가 다정한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 나는 다정한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마음을 받고 주고 사랑을 하면 내가 나눈 만큼 평화를 얻게 된다.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배척하고 나와 다르다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귀찮다며, 나와는 상관 없다고, 다른 이들을 외면하지 말기를. 세계 어디에나 있는 그 많고 많은 다정한 사람 중 한 명이 되기를 바란다.



지하철 역에서 길을 묻는 사람을 경계하게 되어버린 세상. 아이에게도 함부로 길을 알려주거나, 물건을 들어드리지 말라고, 선뜻 도움의 손을 내밀지 말라고 교육한다.  그럼에도 그림책을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다정한 사람들을 더 믿고 싶어진다. 세상은 아직 훈훈하고 따뜻하다는 걸. 꽤 살만하다는 걸. 아이에게 온 세상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다정하지 않은 뉴스를 볼 때마다 숨이 턱 턱 막혀오긴 하지만, 희한하고 신기한 소식을 전하는 게 뉴스인 만큼, 아직은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고 더 보편적인 거라 믿고싶다.  그래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나 또한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정한 사람들 틈에 묻어가야지. 슬쩍 발을 담궈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다정한 그대여.

그대도 드루와 드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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