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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13. 2022

강릉바다는 언제나 옳다

<파도는 나에게> 하수정 그림책

세 번째 만나는 강릉바다였다. 화창한 해님은 어린이날답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고, 따스한 바람은 그늘에서 우릴 감싸 안아주었다. 비록 다음날은 지친 해님이 구름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지만, 어쩌면 어제와는 다른 구름이 드리운 바다를 만끽할 수 있어서 강릉바다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강릉이 좋은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바다에서 나고 자란 내가, 단 한 번도 바다에 대한 갈망을 느끼지 않고 살아온 내가, 바다 이야기만 해도 '꺄악 좋겠다'를 만발하는 서울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그런 내가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치는 곳이 있었으니. 내 심장이 아직 잘 뛰고 있는구나 느끼게 해주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푸르른 바다를 눈코입에 꾹꾹 눌러 담으러 또 가고 싶다고 염원하게 되는 곳. 그곳이 바로 강릉바다다.



그렇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한 걸음에 달려온 나는, 파도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모래사장으로 사르륵 스며들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 벽에 부딪히라고, 처절하게 부딪혀보고, 또 조용히 스며들어 보라고. 온전히 스며들지 않을 때면 다시 또 부딪히면 된다고. 파도처럼 그렇게 해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시 내 몸을 부서뜨려 보라고. 그렇게 해도 별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모래 알갱이 틈으로 사르륵 나를 녹여 보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하나가 되어 '철썩~ 타악! 사르륵... 철썩~ 타악! 사르륵...' 하고는 나만의 인생 연주를 하고 있으리라고. 그렇게 파도는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강릉 바닷가에서 파도가 나에게 하는 세레나데 못지않은 달콤한 연주를 듣고 있으니, 그림책 '파도는 나에게'라는 책이 떠올랐다. 어느 날 불어오는 바람에, 마구 뛰어다니고 싶어서, 무작정 누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떠나 도착한 바다. 바다는 나를 감싸 안아주고 알아봐 준다. "너 왔구나."하고.

바다는 어쩌면 매우 낯선 공간이 아닐까? 쳇바퀴 돌아가듯 끊임없이 돌기만 하는 일상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바다다. 언제나 갈망하는 공간이면서도 쉽게 즐기지 못하는 마음속에 간직만 하게 되는 낯선 공간. 저 깊은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어릴 적부터 수없이 지나쳐 익숙하면서도 또 다른 바다라 낯선 이 공간에 오면, 잠자고 있던 나의 감각들이 깨어난다. 마스크에 휩싸여 향기와 냄새를 즐기지 못했던 코도 짭조름한 바닷냄새를 담으려 노력한다. 도심 속 소음을 막기 위해 작은 구멍에 꼬옥 끼워 넣었던 이어폰도 벗어던지고, 대신 끼룩끼룩 갈매기와 철썩철썩 파도의 랩 배틀에 귀를 기꺼이 내어준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던 밥 알갱이 대신, 혀를 감싸는 고추냉이 향을 시작으로 두툼한 생선 살코기를 입안 가득 느껴본다. 바다향으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선 걷는 바다는 더 예쁘다. 반짝이는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채 나를 향해 넘실 넘실 춤을 춘다. 햇볕이 구름에게 잠시 하늘을 맡긴 날에는 조금은 슬퍼 보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위로의 메시지도 전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내일 해가 뜨면 또 빛날 거라고.




해운대 앞바다도, 제주 바다도, 하와이 바다도 좋지만,

하염없이 넓게 펼쳐진 검은 물결과 하얗게 부서져서 거품으로 사라지는 강릉바다

나를 반겨주어서, 나와 닮아서, 나에게 위로를 해주어서

다음에 또 오라고 말해주어서 좋다.



그런 강릉바다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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