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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14. 2022

살맛 난다. 그래 사는 게 이런 거지.

그림책『당연한 것들』- 코로나가 가져다 준 선물

여름이 오려는 문턱.

창문을 열어놓으면 후끈한 바람이 스며들어 기분이 좋아지는 요즘이다.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활짝 열었다.

"자자자자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다다다다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마이크 에코가 들려왔다. 6월 1일 지방선거 운동을 벌써 시작한 걸까?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이리도 시끄러운 걸까 나는 귀를 기울였다.

"운동회의 꽃 계주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각 팀들은 준비해 주세요."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계주였다. 그랬다. 집 앞 고등학교에서 운동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단어란 말인가.



그렇게 시끌벅적한 소리가 계속되었고 얼마 뒤 학원을 마친 아이를 데리러 밖으로 나갔을 때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까지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이 훨씬 많았지만 마스크로도 채 감추지 못한 얼굴에는 전에는 없던 생기가 돌았다. 평소 사람이 많은 거리를 무지하게 싫어하는 나이를 먹어가는 아줌마였지만, 오늘만큼은 고등학생들이 재잘재잘 까르르 웃어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아침 산책을 할 때에도 마주했었다. 숲 체험을 하러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강가에서 돌멩이를 주워 물수제비를 띄우며 놀고 있었다. 초록의 들판과 푸르른 하늘이 배경인 곳에 피어난 빨갛고 노란 꽃이 살아 움직이는 것 마냥, 알록달록 옷을 입고 요리조리 통통 튀어 다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 모습이 너무 특별해서 사진에 담으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생기는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담기지 않고 넘쳐흘렀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 순간들이 어떤 화려한 장면들보다 마음에 들었다.


아직은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마구 활보하는 게 어색하다. 서로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더 많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은 백신을 맞지 않아 혹시 더 위험하지 않을까 조심시키다 보니 나 또한 벗기가 꺼려진다. 또 마스크를 쓰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 자신감이 생긴다고 할까? 편하고 익숙해진 마스크였다. 하지만 나의 핸드폰 사진첩에는 이제, 하얀 부직포 대신 하얀 치아를 반짝 드러내고 찍은 사진들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다. 가끔 멋진 장소에 가서 사진 찍을 때마저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촬영해 '아차'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그렇게라도 담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한 요즘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둘째가 하루는 학교에서 학습지를 가져왔었다. 친구 얼굴 그리기를 했다며 나에게 보여주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입 주변이 까만 크레파스로 마구 색칠되어 있었다.  이 아이의 마음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길래 친구를 이렇게 표현했을까 갑갑하고 두려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아들, 이건 왜 이렇게 까맣게 칠했어?"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아들.

"아 ~ 마스크야. 걔가 검은 마스크 썼거든."


철렁했던 가슴이 다시 한번 철렁,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요즘 아이들의 그림에는 언제나 마스크, 체온계, 가림판이 등장하고 PCR검사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매달 바뀌는 짝꿍 찾기로 쏠쏠한 추억을 쌓는 시간도 사라져 버렸다. 친구의 얼굴은 눈밖에 모르고, 서로의 감정을 온기를 느끼기에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점심시간에나마, 등하교할 때나마,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그 친구들의 표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림책 『당연한 것들』은 가수 '이적'씨가 노래를 만들었고, 그걸 책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받아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책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잃어버린 당연한 것들에 관해 담겨있다.


누군가와 온기를 나누고, 일상을 나누고, 함께 웃으며 함께 어디론가 떠나 추억을 쌓던 시간들, 나의 삶을 누리던 그 많은 것들을 코로나가 앗아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며, 그런 날이 올 거라며 우리 힘차게 웃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힘껏 웃어요.


           

이적 씨는 이 그림책을 출간하며 인터뷰를 했다. 얼른 이 책이 추억이 되면 좋겠다고, 그래서 웃으며 그때 그랬지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오면 좋겠다고. 그 기사를 읽으며 언제 오기는 할까,, 다음 달엔 올까... 내년엔 될까,,, 또 다음엔 될까,,, 안 되면 어쩌지,,, 했는데 드디어 그런 날이 왔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들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여전히 우리 중 누군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달리고, 일상을 찾기에 조금 버거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들 희망과 환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참아 왔던 만큼 힘껏 잡아당긴다. 당연하지 않은 일상들에 처절히 괴로웠지만,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서 잊고 지냈던 하루하루가 참 감사하다.     



운동회 하며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마이크 에코 소리, 운동장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강가에서 물수제비 튕기는 소리, 치아 8개를 내놓고 환하게 웃는 사진. 우리 곁에 있었던 당연한 것들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요즘.           



살맛 난다. 그래, 이런 게 사는 거지.

내일도 살맛 나는 세상이 한 걸음 더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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