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노래들을 공감하기까지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군더더기도, 수사의 남발도 없는 단순한 구절이 당시 얼마나 나의 마음을 대변하던 노랫말이었는지.
눈부시도록 화창한 날씨도, 활짝 핀 꽃의 향연도 함께 만끽할 그 사람이 없다면 내게는 아무런 의미로도 와 닿지 않고 지독한 고문일 뿐이었던 그때, 이전에는 그저 아름답고 섬세한 멜로디의 곡에 지나지 않았던 「꽃밭에서」는 버스 안에서 느닷없이 들려와 예기치 못하게 내 마음속에서 재조명되고 깊은 곳을 건드려 울렸다.
아마 저 가사에서 단어 하나라도 달랐다면 내 마음을 그렇게까지 후벼 파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저 곡이 내 귀를 지나 가슴에 박히던 순간 나는 틀림없이 사랑을 했고 잃어본 경험자의 마음으로 쓴 곡이리라 확신했다.
이승환의 「천일동안」, 라디의 「Goodbye」, 크러쉬의 「가끔」, 10cm의 「그게 아니고」, 이적의 「빨래」, 김광석의 「그날들」, 김동률의 「Replay」, 웅산의 「사랑이 널 놓아준다」, 오지은의 「The End Of Love Affair」, NY물고기의 「눈먼 가슴」, 조규찬의 「눈물」,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 이상은의 「사랑해 사랑해」, 이소라의 「이제 그만」, 소란의 「넌 행복해」, Jacksons의 「Time Waits For No One」, Bruno Mars의 「When I Was Your Man」 그리고 그 밖의 시대를 불문한 여러 노래들이 이별을 경험하던 내게 그런 확신을 줬다.
그것은 사랑을 경험했고, 또 그에 따르는 상처를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노래들의 진정한 깊이이자 무게였다.
연애경험이 전무했던 시절에도 나는 저런류의 노래들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노래일지라도 경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가벼운 도취로 음미했던 이별의 곡들에는 그 진정한 무게감이 빠져있었다.
마찬가지로 연애경험이 없었던 시절, 실연의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에게 몰이해적이며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었던 나에게는(물론, 모태솔로에게 실연을 위로받고자 했던 친구부터가 잘못이었다) 실연이라는 것이 미지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경험자들조차 꺼리게 되는 실연 위로의 임무를 떠안고 그 가늠할 수도 없는 미지의 고통을 토로하는 친구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었다.
그랬던 내가 첫 연애를 시작했던 순간 이미 실연은 미지의 고통이 아니었다. 그 사람을 잃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실연에 가까운 고통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과의 제대로 된 연애경험은 완전히 다른 세상과 다른 차원의 감성에 눈뜨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부풀려지고 왜곡된 세상에 들어오게 된 이상 다시는 기존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에 들어온 이상 나는 이전과 달라진 노래의 맛을 음미하며 과장된 감동과, 지나치게 풍푸한 감성, 미화하여 해석되는 모든 의미들, 소스라치는 외로움, 얼토당토않게 큰 슬픔, 분노, 질투, 상실감 등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을 때에는 몰라도 됐을 각종 과민한 감정들을 일상 속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2016. 4. 28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