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Dec 17. 2024

요즘 을지로에 온 사람들이 느끼는 것

사장님, 이제 여기는 일본이에요!


라는 말을 들은 것이 3년 전이다. 을지로 곳곳에 일본식 선술집, 소위 우리가 이자까야라고 부르는 곳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십분의일이 있는 골목이 심했는데 원래 여러 인쇄소들과 칵테일 등 잔술을 파는 작은 바 2-3곳 그리고 와인 바 십분의일이 전부였던 조용한 골목에 일본식 술집이 4곳이 오픈하면서 거리에는 일본어 간판과 휘장들이 나부끼게 됐다. 그중 한 곳의 사장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들은 기존에 운영하던 술집을 리뉴얼해 완전히 일본식 술집으로 바꾼 케이스였는데 당시 들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 나가보세요. 지금 을지로는 다 일본으로 바뀌고 있어요. 을지로 초기에 와인 바가 생겨났던 것처럼요. 


그들은 이미 오래되어 고정손님이 있는 곳들은 괜찮겠지만 자기들처럼 어중간한 곳은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더 많은 일본식 술집이 생겨났고 을지로에 처음 또는 오랜만에 방문한 사람들은 이제 다들 와 여기 완전 일본이네... 라며 혀를 내두른다. 


최근 몇 년 사이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한 F&B업계에 발생한 어떤 유행은 단순히 '일본식'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근 2-3년 사이에 이 업계의 키워드는 '재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길이 막힌 것에 대한 향수의 반영이었을까. 발 빠른 사람들이 외국 어딘가에 봤던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일본 이자까야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어느 타코집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타코집, 미국남부 가정식을 재현한 미국식 식당 등이 서울 여기저기 만들어졌다. 


을지로에 일본식 술집이 생겨난 건 이런 흐름의 결과이기도 했다. 굳이 다른 것 중에서도 일본이 유행한 것은 가장 색깔이 뚜렷하고 비교적 쉽게 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뭐 하나를 고르자면 다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일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을지로에 유독 많이 생긴 걸까. 아무래도 을지로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명동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상권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 맥을 잇기 위해서...? 그런 불행한 맥락이라도 가져왔다면 좋겠지만 그런 식의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사람은 없다. 단지 아직 을지로에 빈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을지로가 아닌 다른 서울 지역의 몇몇 요즘 새로 떴다는 골목에 (그래서 공실이 많았던) 가보면 꼭 일본어 간판을 단 술집들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 모든 원인은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 단순 유행인 것이다.       


'을지로 와인'이라는 키워드도 상업적 유행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초기 을지로는 적어도 맥락이 있었다. 당시 을지로는 여러 장점에 비해 권리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급부상했다. 그래서 가게를 좀 해봤다는 프로보다는 처음 이 업계에 뛰어드는 초심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무()의 상태였던 을지로에 정착해 커피, 맥주, 위스키 등 각자 취향이 담긴 공간들을 만들어 갔다. 그중 와인 바가 많았던 이유는 초심자들이 접근하기에 조금 더 쉬운 형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값비싼 와인과 음식을 파는 곳보다는 가벼운 핑거푸드 위주의 캐주얼 와인 바가 많았다. 하기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변형을 줄 수 있는 캐주얼 와인 바가 뜨면서 거리엔 다양한 종류의 술집이 생겨났다. 어설픈 곳들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맛을 즐겼다. 자본이 부족했던 초심자들은 화려한 간판을 달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입간판을 두거나 기존의 인쇄소 간판을 재활용했다. 그래서 을지로엔 간판없는가게, 지도를 보고 열심히 찾아다녀야 하는 술집들이 생겼다. 을지로를 찾는 사람들은 원숙한 노포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새로 생겼다는 카페나 바를 찾아다니며 을지로 거리를 누볐다. 초기 을지로인들이 만들어냈던 아마추어리즘은 그렇게 하나의 작은 을지로 문화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지금의 을지로 상권을 만들어냈다. 


십분의일 골목에 새로 일본 술집을 만든 한 사장님은 '제가 이 골목을 활성화시키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후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골목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일본식 휘장과 일본어가 적힌 메뉴판을 신기해하는 어떤 손님들이 이 근방을 많이 찾긴 한다. 하지만 예전 을지로를 찾던 많은 단골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들과 함께 을지로라는 신흥 상권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문화도 자취를 감췄다. 무엇이 활성화인가. 우리가 도쿄에 여행 가는 이유는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야끼니꾸와 하이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만의 문화와 분위기를 즐기기 위함이다. 과연 일본을 비롯한 타지에서 을지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제 을지로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일본식 간판이 곳곳에 걸려있는 거리에서 그들은 무엇을 추억하고 떠날 것인가. 

 오래된 곳이나 신규업장이나 모두 똑같이 상업적이다. 그리고 자기 앞 골목이 활성화되길 바란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롱런하기 위해진짜 활성화는 무엇인지, 한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은 무엇인지 한 번 더 고민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것이 진짜 활성화며 그것이 을지로가 함께 잘되는 일이다. 




사진은 작년 도쿄에서 찍은 일본 술집. 사진을 보며 어딘가 친숙함을 느꼈다면 을지로에 자주오는 분일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