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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미소

by 모과

십분의일 리뷰를 보면 가끔 대화하기 편했다는 후기가 올라온다. 십분의일은 그렇게 노래를 크게 트는 곳이 아니다. 테이블 간섭도 너무 빡빡하지 않고 넉넉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소곤거리지도 않고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대화하기 편한 공간이란 것은 그런 곳인 것 같다. 그냥 평상시처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매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님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간대야 들을래야 들을 수 없겠지만 한 두 테이블 밖에 없고 조용한 마감 시간대는 아무래도 말소리가 잘 넘어온다. 굳이 사람들의 말을 엿듣는 악취미가 있는 게 아닐지라도 어떤 대화들은 귀에 꽂힌다. 6,7년 전 내가 매장에 종일 앉아있을 때는 이런 얘기가 많이 들려왔다.


너 oo 알지? 걔네 결국 파혼했잖아. 왜인 줄 알아? 혼수를 거의 다이소급으로 해갔대.


아니 그런 일이 있나...? 인스타그램에 짤로 올라올법한 소재다. 텍스트로만 접하던 이야기가 내 눈앞에서 들려온다. 신기했다. 의외로 이런 얘기는 아직 해가 채 떨어지지 않은 오픈 시간대에 많이 나왔다. 피크 시간이 지나가고 적당히 술에 취한 손님들이 남아있을 땐 가끔 영화같은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선배 저는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결혼은 그냥 그 나이대, 그 타이밍에 옆에 있는 사람이랑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글쎄...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데...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녀의 대화. 이후 내용까지 기억나진 않지만 두 손님은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와인 잔을 기울이며 거의 비포선셋을 찍었다. 그러니까 그때 기억에 남는 손님의 주류는 보통 30-40대 여성이었고 그들의 대화 주제 중 상당수는 역시 연애와 결혼이었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술자리에 앉은 그들은 그들 자신 또는 다른 누군가의 결혼,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나는 딱히 결혼 적령기가 아니었음에도 괜히 귀가 솔깃했다. 어쨌든 20대는 아닌 30대로서 나도 머지않아 곧 겪을지도 모르는 공통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바깥 풍경이 변한 것처럼 내부의 모습도 달라진다. 언젠가부터 30대보다는 20대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매장 입장에서는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은 어째 서글프다. 또래 손님이 빠지고 더 어리고 젊은 손님들이 다수가 되니 매장은 더 젊어지는데 혼자 나이 드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지. 어쩐지 이곳도 세대교체라는 게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 나는 것이다.


대화의 풍경 역시 바뀌었다. 한 번은 십분의일에서 인스타에 올릴 와인 사진을 찍고 있는데 6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4명의 손님들이 주르륵 들어오더니 구석의 큰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갓 스무 살을 넘겼을듯한 어린 여자 손님들이었다. 어렵사리 주문을 끝낸 젊은 손님들은 한참을 자기들끼리 호호 깔깔 꽁냥 거리더니 그들 중 한 명이 무언가를 조심스레 가방에서 꺼냈다.


아니 이게... 사실 너네 주려고 저번부터 만든 건데...

대박 이게 뭐야? 뜨개질? 배웠어?

아니 내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다음에 내가 진짜 이쁘게 만들어줄게!!!


등을 돌린 채 사진을 찍고 있던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염탐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마 직접 뜨개질해 만든 키링 같은 것을 선물한 것이었겠지. 요즘 뜨개질이 또 유행이라던데 사실이었구나... 오디오로만 들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면서도 괜히 쑥스러워하는 마음, 내 또래에서는 이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과 풋풋함을. 와인 바에서 와인을 사 마시는 것도 낯설어 어색하게 앉아있던 그 기운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단골이 사라졌다며 아쉬워했었는데, 사실 단골은 사라진 게 아니라 바뀐 것이었을지조 모른다. 멀찍이 그들을 바라보니 절로 아빠 미소가 났다. 언젠가 더 시간이 흐르고 그때도 내가 이곳에 있다면 그때는 아빠 미소가 아니라 정말 아빠가 됐을수도 있을텐데. 시간의 흐름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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