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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와인

GDP는 좀 갑작스럽지만

by 모과

최근 와인 산업의 성장세가 무섭다, 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을 정도로 국내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어느샌가 익숙한 주류 문화가 되었다. 이렇게 아예 없던 문화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20대를 보낸 2006~2015년 경만 해도 정말 아무도 와인을 마시지 않았다. 와인이라는 술의 존재는 알았다만 그건 어떤 특정 어르신들의 동호회 문화였거나 또는 아주 특별한 날 그날의 분위기를 거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 정도였지, 야 우리 오늘 가볍게 와인이나 한 잔 할까?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십분의일엔 와인 맛을 보러 온 20대들이 즐비하다. 그들에게 와인은 맥주나 막걸리처럼 그날의 여러 선택지들 중 하나일 뿐이다.


와인에게 무슨 일이, 아니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무슨 갑작스러운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와인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해외 연수라도 돌렸단 말인가. 어떤 기사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소위 '혼술족'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와인을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한다. (언론은 너무 많은 것들을 코로나로 퉁치려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가 타오르던 와인에 부채질을 했을 수는 있겠지만 이미 2018-2019년도부터 을지로를 비롯한 서울의 주요 와인 바들은 대부분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단순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주류 선택지로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와인 시장이 성장한 이유 중 하나로 GDP 성장을 짚어볼 수 있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뉴스에 나오는 GDP 몇만 달러 그거 얘기다) 굳이 와인을 콕 집은 걸 본 적은 없지만 한 나라의 GDP가 3만 달러를 넘기게 되면 국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변화가 온다는 분석을 접한 적 있다. GDP가 3만 불에 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 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질 만큼 커졌으며 선진국으로 부를 수도 있는 나라에 들어섰으며 그에 따라 국민들의 취향과 그에 따른 소비 욕구도 다변화됐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원래는 소주나 맥주, 아니면 소주에 맥주를 타서 소맥 정도 즐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술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의 GDP가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한 것은 2014년이다. 서울에 와인 바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7년도.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앞뒤가 맞긴 맞는다.


와인과 비슷하게 성장한 게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커피다. 정확히 하면 스페셜티 커피라고 해야겠다. 내가 어릴 적에도 커피는 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때만 해도 아메리카노 같은 걸 마시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국인의 커피는 언제나 맥심이었다. 집에서도 맥심에 프림, 설탕을 구비해 두고, 둘둘둘.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종종 커피를 타 드렸다. 하지만 이제는 웬만한 할아버지들도 메가커피에서 아아를 사드실 줄 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이탈리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에스프레소를 즐길 줄 알고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드립커피를 내린다.

급진적인 성장속도만큼 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우선 원료를 모두 해외에서 들여온다는 것. 한국은 커피와 와인 산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다. 초기 창업의 벽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 빨리 많이 생긴다. 어딘가 묘하게 커플 같은 면이 있달까.


확실하게 다른 점도 있다. 커피는 낮에 팔고 와인 밤에 팔고... 이런 것 말고. 커피는 variation 그러니까 변형이 가능하다. 그래서 브랜딩을 할 수 있다. 말차니 아몬드니 무슨 무슨 라떼도 만들고, 크림을 얹어서 아인슈페너도 만들고. 어떻게 창의적으로 잘 변형시키냐에 따라 그 커피집의 컨셉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건 곧 새로운 브랜딩을 뜻하며 나아가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내 스페셜티 커피의 부흥사는 짧지만 정말 많은, 잘하는 커피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너무 많아서 손에 꼽기도 어렵다.


반면 와인은 그 배리에이션이라는 게 참 어렵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원료를 해외에서 가져왔다는 출발점은 같은데 그다음부터의 길은 완전히 달라진다. 더 이상 손을 댈 게 없기 때문이다. 하기사 생두를 가져오는 커피와 이미 발효까지 시켜 병입한 와인을 그대로 비교하는 것도 어렵긴 하다만. 로스팅과 블렌딩을 통해 아예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커피에 비해 예쁘게 라벨링까지 되어버린 와인은 들여온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유통을 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뭐 레드와 화이트를 맘대로 섞어서 갑자기 로제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와인을 파는 사람들이 다룰 수 있는 건 끽해야 음식과의 페어링 정도다. 좋은 음식과 와인을 매칭해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개인에게 맞는 와인을 제안해 주는 추천 서비스정도가 국내에서 와인으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다. 그러고 보면 와인으로 브랜딩을 한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대기업이 주도한 보틀벙커나 와인 구독 서비스를 제공했던 위키드와이프 정도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반이 취약한 와인 바, 더 넓게 와인 업계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무자비한 시장에서 와인 판매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편에 계속




20220303161338_1724436_1000_1606.jpg 출저 :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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