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몬드 연애소동>은 전형적인 하이틴물입니다. 영화는 총 4가지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며 전개합니다. 이야기의 소재는 사랑, 섹스, 마약, 낙태 등 요즘 틴에이져 미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소재인데요. 8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이 영화는 지금의 기준에서 보기엔 어딘가 조금 엉성해 보입니다. 하지만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저 소재들을 다 담아낸 것 치고는 꽤 세련된 구성을 갖췄습니다. 각자의 세계가 뚜렷한 캐릭터들은 웬만한 로맨스물 캐릭터들보다도 매력적입니다.
FAST TIMES AT RIDGEMONT HIGH 리치몬드 연애소동
감독 Amy Heckerling 에이미 헥커링
출연 Sean Penn, Jennifer Jason Leigh, Judge Reinhold, Phoebe Cates, Robert Romanus, 숀 펜, 제니퍼 제이슨 리, 저지 레인홀드, 피비 케이츠, 브라이언 백커, 로버트 로마너스
가장 눈에 띄는 건 캐릭터입니다. 햄버거집 아르바이트생일 뿐이지만 이를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브래드. 그는 스스로 ‘성공한 남자’(successful guy)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멋진 '선빵'이별통보를 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연습까지 합니다. 자유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함이라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여자친구가 잠자리를 같이 해주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그는 사소한 실수로 직장(햄버거집)에서도 잘리게 되고 여자친구에게도 차이고 맙니다.
브래드의 동생 스테이시는 이제 15살입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는 그의 머릿속은 온통 사랑과 섹스뿐입니다. 그는 자신을 19살이라고 속이고 남자를 만나고 첫 경험을 합니다. 그의 옆엔 나이 많은 오빠와 사귀고 있는 린다가 붙어있습니다.
마이크는 연애 고수 인척 하며 친구에게 훈수까지 두지만 사실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 친구의 그녀가 마이크에게 반하게 되고 그는 그녀를 임신시키고 맙니다. 결국 마이크는 친구와 샤워장에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됩니다.
배역 이름보다는 숀 펜으로 기억되는 스피콜리는 영화 속 등장하는 10대들 중 가장 구제불능 캐릭터입니다. 약물 중독에 늘 반쯤 혼이 나간 듯한 그는 수업 중 강의실로 피자를 시킬 정도로 제멋대로인데요. 그 역시 악인은 아닙니다. 방황하는 모습을 자기식으로 풀어내고 있을 뿐이죠.
모두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입니다. 이후에 쏟아진 하이틴물이 대부분 이런 캐릭터 형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0,90년뿐만이 아닙니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 (2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톡톡 튀는 10대들 역시 <리치몬드 연애소동>에 등장하는 그들과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이 영화만의 특징도 몇 가지 있는데요. 우선 어른이 나오지 않습니다. 학교 선생님인 미스터 핸드가 등장하지만 부수적인 인물일 뿐입니다. 영화 속 10대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일이 됐든 그들은 철저하게 자립적입니다. 어른에게 의존하는 10대가 아닌 자기주도적인 10대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보다 희망적이고 활력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거창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일상을 통해 삶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블랙코미디가 이 영화를 단순한 킬링타임 영화 그 이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방황했던 10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든 방황하는 10대는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하이틴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방황했던 사람들에겐 추억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던질 수 있는 것이 틴에이져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
1
영화 속 주무대가 학교가 아니라 리치몬드몰인 점도 재밌습니다. 몰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합 쇼핑몰입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완공된 영등포 타임스퀘어가 이 형태를 처음 따라한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한 공간이 됐습니다. 미국에선 이미 30여 년 전부터 이런 공간이 존재했다니 같은 80년대여도 향유하는 문화는 정말 다른 걸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2
여러모로 깨알스러운 재미가 많은 영화입니다. 우선 주요 배역 중 한 명으로 숀 펜이 출연했고요. 니콜라스 케이지의 단역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역시 피비 케이츠의 수영복 씬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