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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un 24. 2019

블랙미러 : 스미더린, 조각난 사람들

우리는 정말로 연결되어 있는가

 

그 건물에서 나오는 것들 전부 다 이러고 있어. 고개를 드는 법이 없잖아.
하늘이 자주색으로 변해도 한 달은 눈치 못 챌 새끼들!
너도 고개 처박고 있다가 이렇게 됐잖아!


 화가 난 납치범이 자신의 인질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스마트폰 얘기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무척이나 화가 난 것 같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총까지 뽑아 들고 있는 납치범 크리스. 그런데 어딘가 어설퍼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대낮에 이런 인질극을 벌이게 된 걸까요.


블랙미러 시즌5_2 : 스미더린
출연 : 앤드류 스캇(Andrew Scott), 댐슨 이드리스(Damson Idris), 토퍼 그레이스(Topher Grace)


※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히처 드라이버(아마도 우버 같은) 크리스는 매일 SNS 회사 스미더린 건물 앞에서 대기합니다. 스미더린 임원을 납치하기 위해서죠.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근사한 정장을 빼입은 아마도 그 회사 중역으로 보이는 직원 한 명을 승객으로 태우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하느라 고개 한 번 들지 않는 그를 손쉽게 납치합니다. 중역인 줄 알았던 사내가 알고 보니 이제 갓 출근한 인턴에 불과했고 눈썰미 좋은 경찰이 따라붙는 바람에 여러 가지로 일이 꼬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크리스는 꿋꿋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인질과 경찰에게 전합니다. 스미더린 대표 '빌리 바우어'와 통화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런 높은 분이 쉽게 나타날 리가 없죠. 더구나 하필 인턴을 잡아온 탓에 크리스는 여러 직급의 직원들을 거쳐야 합니다. 

“Just fucking get Billy Bower on the phone right now!”



 다른 블랙미러 에피소드들에 비해 상당히 단조로운 작품입니다. 배경도 2018년의 런던이어서 블랙미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련된 근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람들이 종잇장 같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도 않고 AI 로봇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우버가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아이폰을 들여다보는 요즘 세상이에요. 주인공 크리스는 왜 빌리 바우어와 통화하길 원하는가? 에 대한 답 말고는 대단한 반전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저는 <스미더린>이 가장 블랙미러스러운 작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블랙미러 시리즈의 기획자이자 각본가 찰리 브루커가 처음 블랙미러를 세상에 내놓으며 밝힌 기획 의도 "21세기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과 휴대폰, 모니터를 보며 지낸다. 하지만 전원이 꺼지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를 비추고 있는 어두운 거울에 불과하다" <스미더린>을 포함한 이번 시즌 에피소드들이 다 이 초심에 충실한 것 같아요.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봐! 이런 느낌으로요.


 일종의 자신감으로 읽혔습니다. 이제 굳이 자극적이고 화려한 전개를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블랙미러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요. 자칫 밋밋할 수 있지만 곳곳에 녹아있는 블랙코미디가 그런 아쉬움을 덜어줍니다.      

 가령 그놈의 빌리 바우어가 등장하는 장면부터가 압권입니다. 어렵사리 찾아낸 그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외부와 통신을 끊은 채 묵언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자신이 만든 sns 어플 속에 넣어놓고 정작 본인은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은 수행을 하고 있다니 웃지 못할 아이러니예요. 장발에 수행자나 다름없는 그의 차림새는 납치됐던 인턴 직원이 하고 있던 말끔한 정장과 대조적이죠. 

  그러고 보면 '스미더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구경 나온 동네 아이들은 스미더린에 현장 상황을 킥킥거리며 업로드하고 납치범 크리스조차 스미더린 피드에 올라오는 뉴스피드를 통해 바깥 상황을 파악합니다. 


묵언수행 6일 차


 하지만 <스미더린>은 단순히 핸드폰 좀 그만 보고 하늘도 좀 봐! 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스미더린>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통'입니다. 주인공 크리스는 본인을 포함해 하루 종일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는 사람들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지만 그가 정말 원했던 건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었던 거든요. 


Smithereen : A tiny fragment or splinter. 

 스미더린의 사전적 의미는 '조각난 파편'정도로 해석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촘촘하게 연결된 듯 보이지만 정말 우리는 서로가 소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요? 

<스미더린>은 그렇지 않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딸을 잃은 엄마는 자신의 딸이 왜 자살했는지 알지 못해요. 크리스는 빌리 바우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인질극이라는 전통적 범죄를 저질러야 했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사람들은 피드를 받지만 그들은 아주 잠시 동안 반응할 뿐 금세 다들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려요. 크리스의 안타까운 사연에 진심으로 공감한 건 차라는 오프라인 공간에 있던 함께 있던 인질 제이든뿐이었습니다. 


 기술은 유타주 골짜기에 숨어있는 빌리와 손쉽게 소통할 정도로 우리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 지나친 편리함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인간다움을 앗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속 스미더린의 직원들은 납치범 크리스를 달래기 위해 스미더린의 직원들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해요. 수화기 넘어로 스트레스를 낮추는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심리대응팀을 꾸려 빌리에게 실시간 대응 매뉴얼을 띄우기도 하죠. 하지만 이들의 기술은 크리스의 화만 돋굴 뿐입니다. 크리스가 정말 원한 건 자신의 트라우마에 공감하고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데요. 오히려 크리스의 마음을 안정시킨 건 빌리 바우어의 직관과 솔직한 대화였습니다.    

 

 가장 똑똑해보였던 그 IT회사의 직원들처럼 우리는 점점 더 깨진 유리 파편처럼 쪼개어져 상대의 진심에는 공감하는 법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검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만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1. 이번 화 엔딩곡이었던 Andy Williams의 can`t take my eyes off you에 다들 한 번 더 웃었을 텐데요. 잘 들어보면 중반부에 스미더린 심리대응팀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음악 리스트라면서 납치범에게 흘려보내는 통화대기음도 can`t take my eyes off you 입니다 ;; 무서운 스미더린 놈들


2. 셜록의 모리어티로 유명한 앤드류 스캇이 크리스 역을 맡았습니다. 느낌은 약간 다르지만 연기는 정말 한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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