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본격 그린홈 현장 취재기

by 모과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미 영화 속에서 다양한 디스토피아를 접해왔다. 의문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좀비가 창궐하고, AI에게 위협을 당하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많은 이들이 그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열광하며 내면의 불안을 투영해왔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영화 속에서도 보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했다. 사람이 진짜 괴물로 변하는,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최악의 시나리오. 대통령조차 감염자가 되어버린 괴물의 시대. 하지만 인간의 생명력은 보기보다 끈질기다. 끊임없이 적응하며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찾는다. 폐허가 된 도시 한복판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서울 시내의 아주 오래된 아파트, 여기 20여 명의 주민들이 생존해있다. 평범한 아파트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재건축 논의가 진행중인 아파트 그린홈. 이름에 걸맞게 건물 외관이 전부 초록색이다. 드문 드문 일정하게 벗겨진 페인트가 세월을 짐작케 한다. 지은 지 40년은 됐을까. 만지면 바로 바스러질 것만 같다. 굳이 종말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종말 했을 것 같은 기운이 감돈다.


이곳은 일종의 주상복합 형태다. 겉보기와는 달리 1층에 꽤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제법 상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이곳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석현 씨다. 그가 가장 먼저 달려와 인터뷰를 자청했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나마 내가 여기 있으니까 사람들이 버틴 거지. 나 아니었어봐.
사람들이 뭐 먹고살았겠어!”


아파트의 햇수만큼은 돼 보이는 그는 누가 봐도 가발로 보이는 가발을 머리에 얹고 있었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괴물은 그 사람의 욕망이 반영된 모습으로 변이 된다고 한다. 배고픈 다이어트를 하며 음식을 갈망했던 사람은 보이는 것마다 뜯어먹는 식탐괴물로, 기록 경쟁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육상 선수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육상괴물로, 타인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을 갖고 있는 누군가는 거대한 눈알을 가진 눈알괴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가발을 쓴 슈퍼 아저씨가 괴물이 된다면 어떤 괴물이 될까. 사람들의 머리털을 쥐어뜯는 머리털 귀신이 되진 않을는지.

취재 중임에도 대놓고 아내에게 욕을 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누군가에게 그는 괴물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분에게 잘 아는 이혼 변호사의 연락처를 전해주려다 말았다.


이 곳 사람들은 각자 집에 거주하지 않고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모여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어린이집이 필요해 보이진 않는다. 어린이집 원장 차진옥 씨를 만나봤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어린이집에 같이 모여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내놨어요. 저 원래 강남 살았었거든요. 아시죠?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는 얼마 전 눈앞에서 아이를 잃었다고 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앞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물로 변할 것인가. 무엇이 이 재앙을 멈출 수 있을까. 아쉽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다. 다행히 그는 아픔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강남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다. 꼭 이런 곳에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다. 인류가 망하더라도 음악은 남기겠다는 신의 배려일까. 홀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윤지수 씨를 만났다. 종종 이곳 사람들을 위해 작은 공연을 열어왔냐고 물었다.

“아 죄송한데 저 기타 아니고 베이스요.
이거는 그냥 구석에 있길래 잠깐 들어본 건데.”


베이시스트였다. 기타도 칠 줄 알지만 이곳에서 공연을 열 정도의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종말의 한가운데서도 다 같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기도 하던데 역시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 윤지수는 이곳에서 기타를 치는 것 대신 연기를 했다고 했다. 갑자기 괴물이 나타날 것에 대비해 모두가 역할을 나눠 실전 연습을 벌인 것이다. 대단하다. 최근엔 윤지수가 감염자 역을 맡았다. 어떻게 이들은 단기간에 이런 일사불란함을 갖추게 된 걸까. 생존을 향한 인간의 본능인가. 지수 씨가 연주하는 '스위트홈'이 1층 복도에 울려 퍼졌다.


기타 소리를 뒤로 하며 멀리서 괴물의 포효가 들렸다. 그제야 이 아파트에도 어딘가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 주민들도 괴물을 직접 맞닥뜨리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며, 앞장서서 그 위협을 막아선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쪽 구석에서 진검을 손질하고 있는 정재헌 씨를 발견했다. 그는 이 그룹에서 전사, 아니 검사를 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여기 저보다 싸움 잘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지요. 아멘.”


끝인 줄 알았지만 그는 보기보다 말수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보충제를 못 먹은 게 한이 됐는지 계속 프로틴을 찾는 근육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지수 씨와 함께 아이들을 구하러 가던 중에 그놈을 마주쳤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 멋진 근육도 결국 이분에겐 별 수 없나 봐. 생각보다 허접한데? 안 그래? 고깃덩어리.’ 그리고는 녀석을 복도 끝으로 유인했어요. 저는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가 주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주의 친구라. 요한복음 15장입니다. 곧이어 괴물이 달려왔고...”(이하 생략)

무미건조한 얼굴로 칼을 빼들고 있는 그를 보니 일본의 사무라이가 생각났다. 드라마 속에서 친일파나 일본 헌병 같은 걸 맡으면 어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의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아직 대학생인 이은혁 씨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살아남게 된 이유라, 글쎄요. 사람이 살아남는데 이유 같은 게 필요할까요.

싸가지가 없어서 생각해야 될 일이 있다고 해 오래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생존수칙을 만들고 생존자를 찾는 안내 방송을 하고 의사결정이 필요하면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던 사람이 바로 이은혁 씨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그 위기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냉철한 성격, 이성적인 빠른 판단 능력, 그리고 cctv 앞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 외에는 별다른 특권을 갖지 않은 것 그는 리더로서 거의 모든 소양을 갖춘듯했다. 하나의 작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그의 존재는 결정적이었다.


“있어요. 사람을 해치지 않은 괴물이.”

?

흥미로웠지만 격리 상태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저 아저씨가 원래 1408호에 살았던 사람인데, 원래 청계천에서 유명했대요. 이런 거 다 저 아저씨가 만든 거예요. 아 근데 원래 옛날에는 군인이었대요, 그리고 저 사람은 308호. 말만 많고 하는 게 없어, 하는 게. 저분은 1013호 살던 분인데요. 여기 아파트에서 아마 제일 오래 살았을 거예요. 근데 또 여기는 제일 늦게 내려왔어.”


1009호에 사는 손혜인 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혜인 씨를 가장 먼저 만나볼 걸 그랬다.






몇 주 뒤 그들은 계엄군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취재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로 인터뷰를 했던 김석현 씨는 이미 인터뷰 당시부터 감염자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가 결국 무슨 괴물로 변했는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 다신 이런 취재는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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