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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un 10. 2023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도대체 다들 밥은 어떻게 챙기는 거야?

답 없는 울분을 토해낸 건 건너편 순댓국 집에서 저녁을 먹다 말고 내 가게로 뛰어들어왔을 때였다. 늘 손님이 없던 오픈 직후였기에 모처럼 외식을 했는데 하필 이날 자리를 뜨자마자 손님이 왔다. 그래 늘 가는 날이 장날이지.

 퇴사를 하고 작은 바를 연지 3개월. 이제 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나 싶었는데 단 하나, 밥을 먹는 게 몸에 붙지 않았다. 오후 5시에 매장에 나와 오픈 준비를 하고 6시에 문을 연다. 그리고 12시 마감. 출근 전 일찍 식사를 하거나 늦게 밥을 챙겨야 하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그게 안되면 중간에 대충 때워야 하는 건데 그건 또 싫다. 가뜩이나 점심도 혼밥을 하거나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나왔는데 저녁을 김밥이나 서브웨이로 해결해야 한다니. 물론 알고 있었다. 사무직이 아닌 현장직으로서 풍성한 식사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회사원의 때가 덜 벗겨진 나는 그럴수록 더 제시간에 밥을 챙기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 오기가 자라나 그렇다면 다른 자영업자들의 밥은 어떠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인 건 우연히 편의점에서 '신도시'직원들을 마주친 이후였다. 신도시는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소위 핫한 술집이었다. 어둠 속에서 칵테일을 말아주는 직원들 역시 어딘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법이라도 부려서 저녁을 만들어 먹을 것 같았던 그들의 손에는 내 것과 비슷한 편의점 도시락이 들려있었고 밝은 곳에서 마주한 그들의 얼굴은 유독 야위고 핏기가 없어 보였다. 우리의 밥이 가진 보편성은 결국 편의점 도시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라고 하기엔 어째 좀 민망하지만) 재취업을 했다. 공공기관의 지원센터에 입사한 나는 예비창업자들을 심사하고 멘토링해주는 일을 했다. 느긋하고 온화한 분위기 속의 사람들은 아주 친절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주방이 아닌 사무실에 앉은 나는 신이났다.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즐거운 점심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터치도 받지 않은 채 삼삼오오 식당에 모여 맛있는 밥을 먹는 그 시간, 직장생활의 꽃 점심시간! 그런데 점심을 먹으려 기웃거리는 나에게 사람들이 친절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는 원래 도시락을 싸와서요..." 어떤 사람은 근처에 먹을 게 없어서 또 누구는 다이어트 중이어서 다른 동료는 물가가 비싸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을 했다.

 그다음은 공간 기획을 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최근 투자를 받았다는 이곳은 공기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강남의 맛! 전 직장과 달리 비슷한 또래가 많은 이곳이야말로 내가 찾던 곳이구나 싶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사람들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구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강남의 최신 스타트업은 그에 걸맞게 너무나 바빴고 회의니 미팅이니 정신이 쏙 빠지는 하루를 거치다 보면 밥때를 놓치기가 일쑤였다. 몇 달이 지나도록 밥은커녕 다른 팀엔 어떤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도 없었다.  

  이쯤 되니 내가 잘못된 건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 친구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난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과 점심 한 끼만 먹을 수 있으면 되는데, 왜 그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가 딱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원래 그게 제일 어려운 거야..." 친구가 다니던 스타트업은 코로나를 겪으며 사무실을 뺐다. 그를 비롯한 직원들은 기약 없는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재택근무는 좋지만 매번 혼자 밥 먹는 것도 괜찮아?" "괜찮은데? 아직은... 근데 혼자 있으니까 밥을 잘 안 챙기게 되는 것 같긴 해." 그래 바로 그거야!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 새로운 직장, 아니 점심시간을 찾아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나는 결국 세 번의 이직 끝에 다시 자영업자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꼭 삼시 세 끼를 먹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제때 밥을 먹지 않았을 때 위에서 보내는 신호, 때로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고 때로는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듯한 그 신호, 그 두드림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미친놈아 밥 좀 먹어, 안 먹으면 목구멍에 위산을 부어버린다... 다행히 위산이 목구멍으로 올라오진 않았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점점 본능적으로 삼시 세 끼를 원하게 됐다. 그리고 적어도 그 셋 중 한 번은 스마트폰 속의 동영상이 아닌 진짜 사람과 마주하고 여러 개의 위장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길 원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게 어렵다. 어느새 우리에겐 밥보다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다시 사무직의 탈을 쓰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동안 내가 바를 운영하는 곳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힙한 가게들이 유행처럼 번지며 또래 자영업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제 전처럼 밥을 어떻게 챙기는 건지? 식의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기엔 시간도 많이 흘렀고 다들 어디선가 알아서 밥을 챙기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한 건 사실이다. 다들 어디에서 어떤 밥을 먹고 있을까. 여전히 어두운 구석에 홀로 앉아 편의점 도시락을 뎁히고 있을까. 여전히 답을 들을 순 없겠지만 무슨 일을 해도 좋으니 우리 밥은 먹고 하자, 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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