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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un 24. 2023

집 나간 설렘을 찾습니다

내 설렘을 돌려줘

설렘이 사라졌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만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최근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설렘 본 적 있니? 내 설렘을 남에게 찾을 순 없다. 질문을 바꿔 당신의 설렘은 안녕한지 물었다. 요즘 설레는 게 무엇이냐고.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 같았던 무딘 직장인들의 눈이 잠시 커졌다. "설레는 것...? 글쎄... 당장 재밌고 즐거운 건 그나마 알겠는데 설레는 거라..." 한 친구는 며칠이 지난 뒤 말했다. "모과씨가 말한 게 아직도 생각나요. 설레는 것, 설레는 게 도대체 뭐지."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즐거움에 젖어있을 틈이 없다. 사라진 설렘을 빨리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렘은 누구에게 도둑맞았는가.


 지금 당장의 기쁨과 달리 설렘은 미래에 대한 기대치다.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림.' 설렘에 대한 사전적 정의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있는 건 그 순간은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종일 마음이 콩딱거리는 게 결코 편안한 상태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그 마음이 그립다. 작은 기대에도 두근거리며 즐거운 내일을 그려보는 그 순간 말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아 일요일이다. 디즈니 만화동산 볼 시간이네! 졸린 눈을 뜨고 티비 앞으로 가는 마음은 벌써 두근거린다. 그보다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이 눈앞에 펼쳐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몹시 설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야들야들한 기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오갤3가 드디어 개봉했구만. 죽어가는 마블의 마지막 한방! 총 쏘는 너구리가 주인공이라니 재미있을 게 분명함에도 어째 마음은 시큰둥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라는 명제를 배워버렸다. 예고편을 보고 잔뜩 기대하며 영화관에 갔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않아 떨떠름한 얼굴로 영화표를 쥔 채 상영관을 나서던 게 대체 몇 번인가. 더 이상 인스타그램의 체험광고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또 몇 번일지. 장밋빛인 줄 알았던 세상이 회색빛이었단 것을 깨달으며 가슴속 설렘도 서서히 자리를 잃었다. 너구리가 총을 아무리 찰지게 쏜들 디즈니 만화동산을 기다리는 설렘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범인은 시간인가. 합리적 의심이다. 아이스크림 설레임이 전 국민의 맞춤법을 훔쳤듯 지나간 시간이 우리의 설렘을 훔친 것이다. 시간은 잠시도 쉬어가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설렘을 훔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칠순을 넘긴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보고 있자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영화 속 할머니들의 얼굴은 일요일 아침 티몬과 품바를 기다리는 내 얼굴보다 맑고 밝다. 아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 부치는 할머니의 연필촉엔 분명 설렘이 묻어있다.   

 혹시 설렘을 쫓아낸 건 이 도시일까. 매일 아침 비굴한 얼굴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도시의 모든 설렘은 전부 어디론가 탈출한 것 같다. 도시의 숨 막히는 공기를 견디다 못해 단체로 버스라도 대절해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으로 떠나간 것이다. 설렘을 몰아낸 주범을 도시로 확신하며 와인 잔을 닦고 있는데 오늘따라 함께 잔을 닦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다. 말수도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도시의 직장인들 중 하나인 이들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조심스레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종강을 했단다. 그래서 퇴근하고 모처럼 술을 마시러 간다는 것이다. 시험을 끝내고 술자리에 갈 생각만으로도 그들의 설렘은 손쉽게 돌아왔다. 부럽다.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설렘은 도둑맞은 게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간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과 불안, 질투과 열정 같은 다른 세입자들에 밀려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간 것일지도. 오랜 시간 그의 부재도 눈치채지 못했던 나는 할 말이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매일 집 나간 설렘을 찾아 나서려 한다. 이 글은 사실 설렘을 찾기 위한 공고문이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서 그에게 보내려 한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눌러쓴 칠곡 할머니들의 편지만은 못하겠지만 진심을 담아 무엇이든 쓰겠다. 언젠가 이 글이 마법스런 주문이 되어 설렘에게 전달되기를. 그래서 다시 집 나간 설렘이 방문을 두드리기를 기도해 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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