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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ul 02. 2023

마감 없는 삶

우리 모두에겐 마감이 필요하다

 일생을 마감에 쫓기다 요절한 소설가가 있다. 그를 가엾이 여긴 신은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다음 생엔 무엇을 원하느냐? 소설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마감 없는 삶을 주십시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우주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신은 흔쾌히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다시 태어난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요절한 소설가의 입을 통해 인간의 짧은 생과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우화다. 라고 하면 꽤 그럴싸해 보이겠지만 아쉽게도 이건 스코틀랜드와는 아무 상관없는, 지난주 내가 쓰다만 소설의 도입부일 뿐이다. 도입부만 쓴 채 (사실 도입부라고 하기에도 뭐 한) 진행이 안 되는 길 잃은 이야기들이 서랍에 쌓이고 있다. 퇴사만 하면 드라마고 소설이고 뭐든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신에게 마감 없는 삶을 바라며 결의를 다진 소설가처럼 말이다. 퇴사를 한 뒤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몰래 완성했던 기획안의 줄거리를 고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책 <태권도의 철학과 구성원리>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나의 몸철학으로서 태권도의 근원을 밝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태권도가 가지고 있는 여러 제약들이 새로운 변용을 만들어낸다고 적고 있다. 태권도에 대해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제한과 변용이라는 개념만으로도 아 그러고 보니...? 무언가 머리를 스친다. 태권도를 비롯해 스포츠라는 이름을 달고 하나의 종목으로 자리 잡은 것들은 모두 그만의 규칙이 있고 규칙은 범위를 제한한다. 제한 없이 마구 주먹을 휘두른다면? 동네 개싸움엔 아무런 룰이 없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를 보면 (시간이 많아 옛날 영화들을 자꾸 다시 본다) 주인공 '기쁨'은 라일리가 오로지 즐거워야만 행복한다고 믿는다. 귀엽고 선한 얼굴을 한 그 감정세포는 사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독재자다. 감정센터를 리드하는 공식적인 리더인 그는 '슬픔'따위는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겠고, 급기야 그가 없어야 라일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슬픔을 제거해 버릴 시도를 하기도 한다. 히틀러가 따로 없다. 그의 일시적 광기에서 통제받지 않은 자유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김용옥 선생님부터 인사이드 아웃까지, 우리 주변에선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마감 없는 글쓰기가 얼마나 허술한지 경고하고 있다. 


 신에게 마감 없는 삶을 요청한 소설가가 궁금하다. 좋지 않은 결말이 예상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은 결말을 보고 싶다면 지금 우리 모두에겐 마감이 필요하다. 나와 소설가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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