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위해 일어난 일들

선물 같은 액땜 꾸러미

by 모얼리

내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울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순간이었는데, 그 짧은 몇 초가 5분처럼 슬로모션이 걸렸다. 무의식적으로 내 양손은 살짝 나온 아랫배를 감쌌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 관용적인 표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즈음, 택시 기사님의 거친 욕설에 정신이 화드득 깼다.


"손님, 괜찮으세요?"


기사님이 내 안부를 먼저 물었는데,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이 나왔다.


"저 임신했어요, 기사님. 임산부예요."


기사님이 얼른 내려 차를 확인하러 가는 동안,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지금 택시 타고 학교 가던 길인데, 다른 차가 뒤에서 박았어요."

"괜찮아요? 지금 내려갈까?"

"아냐, 일단 산부인과부터 가볼게요.”


기사님이 보험사를 부르는 동안 나는 산부인과에 얼른 전화를 걸어, 지금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 연락을 했다. 내 발표 순서를 뒤로 미뤄달라고. 아니, 발표를 못할 수도 있겠다고. 보험사 담당자와 연락처를 교환하는 동안, 택시기사님이 다른 택시를 잡아주셨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택시를 타고 바로 근처의 종합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없어요. 산부인과 환자는 안 받아요."


'정신 차려야 해.'


다시 택시를 잡고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로 갔다. 접수를 하고 30분을 기다리는 데, 1시간 같았다. 검진을 다녀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또 왔냐는 표정이셨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씀드렸다. 초음파로 확인을 했는데, 아가는 괜찮았다.


"뒤에서 박은 경미한 교통사고는, 엄마 양수가 보호해주고 있어서 괜찮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며칠은 경과를 지켜보시고, 피가 너무 많이 나거나 안 좋다 싶으면 꼭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초음파 상에 베짱이는 잘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소리도 괜찮았다. 괜찮다는 말을 한 귀로 들으며, 아가 모습을 보자 숨이 쉬어졌다. 남편에게 괜찮다는 연락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내가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지, 동기들도 선생님도 놀란 표정이었다. 얼른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끝냈다. 통과는 할 것 같았다. 동기들끼리 마무리 회식을 한다고 했지만, 그냥 집에 왔다. 침대에 누우니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너 진짜 건강하게 태어나려 하나 봐."


불안을 삼키며 듣고 싶은 말을 뱉었다. 괜찮을 거고 엄마랑 같이 대학원 공부도 해서 똑똑할 거고. 근데, 아냐. 그냥 건강만 해.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였다. 2주 뒤가 대학병원 정기검진이라 더 조심했다. 피는 늘 조금씩 났다가 안 났다가 했다. 길었던 2주 후 검진일은 내 생일이었다. 아가는 잘 크고 있었다. 머리가 조금 크고, 다리는 짧았지만 나를 닮았나 보다 했다.

다만, 수치가 안 좋았다. 임신 전에도 혈소판이 낮긴 했지만 5-6만(정상 15만 이상)이었고, 적혈구는 9-10(정상 11-12 이상)은 나왔었는데, 임신의 영향이었는지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 혈소판은 2.4만, 적혈구는 7.7이었다.


“오늘은 수혈해야겠다.”


혈액내과 주치의 선생님은 웬만하면 수혈 처방을 안 내주시는데, 임신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번에는 빨간 피(적혈구)만 맞기로 했다.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벌어졌다. 그리고 다음번 산부인과 진료는 해를 넘긴 1월 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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