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겠지?
배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여기에 아가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심장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양가에, 주변에 비밀로 하기로 했다. 태명도 그때 짓기로 했다. 2주 후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너무 길었다. 조산 확률 40%라는 숫자가 맴돌았다. 아가가 있다는 게 거짓말 같아서 시약지로 된 테스터기를 매일 했다. 아침마다 점점 진해지는 두 줄을 확인하는 게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기다리던 2주 후,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아가야 안녕?.' 살짝 눈물이 났다. 다른 임산부들처럼 한 손에는 남편 손을, 다른 손에는 초음파 사진을 쥐고 병원 문을 나섰다. 멀리 계신 양가 부모님들께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혈액내과 정기검진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산부인과도 맞춰 방문하고 싶었다. 산부인과 주치의 교수님 앞에는 대기환자가 너무 많아 가장 빠른 예약이 6개월 후라고 했다. 다시 한번 혈액내과 주치의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이 왔다.
"선생님, 저 임신했어요."
교수님께 자랑했다. 그리고 산부인과를 가고 싶은데, 예약이 안 된다고 했다. 교수님이 "그럼 안되지." 하시며 병원 메신저로 협진 요청을 보내셨다. 예약이 다음 주로 당겨졌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다음 주에 한 번 더 볼까?"
소아청소년과에 이렇게 오래 다니는 나이 많은 환자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또 아가를 낳겠다고 하는 환자가 있겠나 싶었다. 내심 교수님도 설레신 것 같았다.
"약 먹는 거, 아가한테 영향은 없을까요? 빈혈이니까 혹시 철분제를 먹어야 할까요? 그리고, 혹시 제 병이 유전이 되는 건 아니겠죠?"
"약은 소량이라서 크게 문제가 없고, 경구 철분제는 크게 도움이 안 될 거야. 이건 특발성이라 유전도 아니고. 건강하게 낳아봅시다."
다음 주에 산부인과 교수님을 만나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괜찮다고 하셨다. 임신 초기에는 2주에 한 번, 그 이후에는 4주에 한 번 보자고 하셨다. 임신확인서를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출산율이 낮다는 데, 병원 가득한 환자들 사이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회사에 얘기하니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었다. 디딛는 발걸음마다 조심조심 걸었고, 먹는 것 하나하나 신경 쓰기 시작했다. 임신한 그 순간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가 마시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임신 초반 내내 피가 비쳤다. 어느 날은 손톱만큼이었고, 어느 날은 손바닥만큼이었다. 대학병원은 너무 머니 동네 산부인과를 계속 갔는데, 그때마다 괜찮았다. 피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혈액수치랑 관련이 있냐고 물으니 그건 대학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라 하셨다. 마음이 답답했다. 괜찮겠지 하면서도 무서운 마음에, 인터넷 글만 자꾸 검색했다. 태명을 지어줘야 아가가 엄마에게 꼭 붙어있을 것 같았다. 꿈에서 귀여운 아기 돼지를 떠올리며 "베이브"를 넣고 싶었다. 그리고 조산이 무서워 뱃속에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베이브의 "베"와 한자 "길 장(長)"을 넣어 "베짱(장)이"로 지었다. 태명을 따라간다는 오래된 속설을 믿고 싶었다. 10주가 지나고, 12주가 지나 안정기가 되니 나아졌다.
그 와중에 대학원은 마지막 학기를 지나고, 졸업 요건을 맞추는 케이스 스터디 발표가 오늘이었다. 첫 번째 발표 순서라 버스를 탈까 하다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아파트를 나서 큰 도로에 진입하려고 깜빡이를 켜셨다.
'휴.'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핸드폰 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쾅', 몸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