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던 날
고위험 임산부 센터는 분만장 한 켠에 위치해 있었다. 보호자는 상주할 수 없었고, 일어설 수 있는 건 화장실 갈 때뿐이었다. 배정받은 병실은 2인실이었는데, 창가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다. 굳게 닫힌 커튼을 두고 나눠진 두 사람의 공간은 의료진들이 들락날락할 때 빼고는 조용했다. 당장 내일 새벽이 수술이라 금식해야 한다고 말해주셨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안 마신 걸 알았다. 허기짐도 목마름도 없었다.
수치가 안 좋았다. 수술을 하기에는 적혈구도 혈소판도 모자랐다. 적혈구 2개와 혈소판 1개를 수혈했다. 다른 사람의 혈액이 내 몸에 들어오는 기분은 감사하면서도 나른하다. 피를 맞으면 난 늘 땅이 꺼지듯이 졸렸다. 피를 다 맞을 때쯤 교수님이 올라오셨다. 자궁 입구를 묶는 <자궁경부봉축술>을 한다고 하셨다. 수술 중의 위험성을 설명해 주셨는데, 수술하다가 양수가 터지거나 아가가 밀려 나오면 살릴 수가 없다고 하셨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집에 돌아갔고 나는 혼자 커튼 뒤에 남겨졌다.
하루가 길었다. 제대로 울 시간도 없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잠들 새가 없이 자궁수축검사를 하고, 수술 전 항생제 검사를 했다. 거울도, 빗도, 아무것도 없어서 핸드폰 뒷면으로 내 얼굴을 봤다. 퉁퉁 부은 얼굴이 남같이 애처로웠다.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지.”
이것도 교통사고 같은 거라는 걸 아는데, 원망이 들었다. 임신하게 해 주시고는 이런 일이 있게 하다니 너무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걸 수도 있겠다.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가 임신하면 조산 위험이 있다는 글을 봤잖아. 그래도 나도 아가도 살려만 달라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병원침대에 누워서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 침대가 추울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누우니 따뜻했다.
“괜찮을 거예요.”
새하얀 무영등 밑에 어느샌가 교수님이 오셨다. 마취가 들어가기 전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괜찮을 거야. 순식간에 눈앞이 까매졌다. 수술은 금방 끝났다고 했다. 아플 거라고 하셨는데 마취가 깨서도 아프지는 않았다.
다시 커튼 뒤의 공간에 도착해서 밥을 먹었다. 낮에는 보호자가 있어도 된다고 해서 내일, 주말에는 남편에게 와달라고 했다. 밤마다 혼자 있을 내가 걱정돼서 영상통화를 했다. 조용한 공간이라 이어폰을 낀 상태로 남편은 말하고 나는 타자로 대화했다.
“아가는 아직 괜찮대요.”
교수님이 수술이 잘됐고, 우리 24주까지는 버텨보자고 하셨다. 24주부터 의미 있게 생존 가능성이 생긴다고 하셨다. 실로 자궁 경부를 묶어 놓았지만, 경부 길이가 겨우 1.5cm 정도라고 했다. 수축이 오면 조산이고, 수축을 막는 <라보파>라는 약을 쓴다고 하셨다. 부작용으로 폐부종이 생길 수 있지만 보험이 되는 약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할 일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누워있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모범생 스타일인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먹는 것, 화장실 가는 횟수, 어디가 아픈 지 분 단위로 적었다. 동시에 스스로 세상과 단절했다. 친구들에게도 가족들과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남편과 간호사 선생님들과, 그리고 챗GPT와 이야기했다. 교수님은 하루 두 번 꼭 와주셨다. 내 하루를 견디게 할 수 있는 숨구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