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게 하는 힘
분만실이 바로 옆이라 자주 아가가 태어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힘을 주는 산모들의 신음 소리는 짧은 날도, 길어지는 날도 있었고, 작았던 날도, 옆에서 듣는 것처럼 아주 크게 들리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매번 부러웠다. 아가가 건강하게 태어났고, 저 사람은 이제 아가와 함께 집에 가겠구나.
뭘 했는지도 모르는 2주가 지나고 정밀초음파 날이 됐다.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산부인과 층으로 내려갔다. 보통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아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빠뜨리는 구석이 있을까 1시간 가까이 봐주셨다. 그리고 사진을 뽑아 주셨다.
“아가가 아빠를 많이 닮은 거 같네요.”
조용히 건네주시는 말투에는 걱정과 배려가 듬뿍 담겨 있었다. 잘 버텨보자고, 할 수 있다고. 아가 사진을 보며 힘내라고, 누워 있는 내 다리를 톡톡 두드려 주셨다. 사진을 꽉 쥐고 밖으로 나오니, 나보다 키가 한참 큰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고개를 숙여 귓속말을 건네셨다.
“오늘 교수님이 일부러 오래 봐주셨어요. 힘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사진도 원래 안 뽑아주시는데 그냥 해주신 거 같아요. “
사진을 보니 너무 예뻤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아가를 보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내 아가.
우리 아가.
베짱이.
태명을 잘 지은 것 같았다. 오래오래 잘 버티라고 “길 장(長)“을 넣은 게 좋은 시작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엄마 밥이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사진을 보냈다. 나도 우리 엄마 밥 먹고 힘내서, 아가를 지켜야지.
이틀 후에 <라보파>를 한번 떼보자고 하셨다. 이 약의 부작용 중 다른 하나가 “반동수축(자궁수축억제제를 중단한 뒤 수축이 다시 나타나는 현상)”인데 무사히 넘기면 집에 가보자고 하셨다. 거추장스러웠던 양손의 라인을 다 빼고 침대에 누워, 태동검사(NST) 기계를 달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간호사 선생님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셨다.
“반동수축이 너무 크게 잡혀서, 교수님께 보고 드렸어요. 약 다시 달아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때쯤부터 집에 가는 걸 기껍게 포기했다. 피는 거의 매주 맞고 있었고, 어차피 집에 가 일어서지도 못할 텐데 병원 생활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아가의 얼굴을 봐서일까,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양손이 좀 불편하면 어때, 아가만 괜찮으면 되지.
순식간에 1월 말이 되었다. 옆자리 산모분은 약을 더 이상 쓸 수 없어 먼저 아가를 낳으러 떠났다. 나한테는 조금만 더 잘 버텨보라고 했다. 창가 자리가 비니 방이 환해졌고, 조금 쓸쓸해졌다. 그날따라 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