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로와 맞지 않게 과학탐구 대신 사회탐구를 선택하는 입시 현상인, ‘사탐런’을 씁쓸해하는 동료 교사를 보며 문득 과거 한 학생이 던진 당돌한 질문이 기억났다.
“이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왜 공부해야 하나요?”
답하지 못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다. 고등학교에서 과학 교과는 좋아하거나, 최소한 배워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분명한 학생들이 선택해왔다. 입시와 평가 중심으로 대입 과목 선택이 편중되는 현실은 그 이유가 더는 분명하지도 당연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연하다 생각해오던 것에 균열이 생길 때 물어야 한다. 도대체 왜 과학을 배워야 할까?
사실, 이 질문은 교과 전반에서 다뤄져야 할 물음이다. 학교는 미리 가공된 지식의 조각들을 가르치고 그것을 얼마나 잘 흡수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왔다. 학생들에게 왜 배워야 하는지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학생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배움은 피상적이기 쉽고, 공부하라 설득하기 어렵다. 스스로 공부하는 이유를 묻지 않은 채 수동적으로 배우기만 하는 건 목적지를 모른 채 달리는 경주마처럼, 결국 길을 잃고 만다.
범교과적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윌리엄 진저는 글쓰기와 생각하기 그리고 배움은 동일한 과정이라 말한다. 하지만 교과 수업에서 쓰기는 주로 기술적 쓰기에 머물러 있다. 반면 비판적 글쓰기를 통해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그 사유의 빈틈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또 가설이 논리적인지, 탐구 결과가 이론과 왜 다른지 글로 설명하며 현상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배움이 자기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묻고 성찰하는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학생은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관을 세울 수 있다. 여기까지 닿아야 학생은 공부해야 할 ‘진짜 이유’를 찾게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올바른 학습의 상태를 ‘깊이 있는 학습’이라 정의한다. 이는 학생이 핵심 개념과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내면화하여 생각이나 경험과 연결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자신의 것’은 앞서 언급한 주체적인 의견과 관점이다. 학생들이 미래라는 불확실한 백지 위에 자기 답을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수업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묻고 생각해야 한다. 그 지적 여정에 철학적 글쓰기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