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활용한 교실 속 철학적 대화
시험의 긴장이 풀린 학기 말, 아이들이 도파민이 지배하는 자극적인 세상으로 빠져들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림책 읽기였다. 과학 교사가 그림책을 읽자고 하는 그 의외성이 통한 걸까. 몇몇 학생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참여했다. 함께 돌아가며 읽은 후 떠오르는 질문을 말하고 대화를 이어가던 즈음, 팔짱을 낀 채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한 아이가 내뱉듯 물었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이 뭐예요?”
순간 교실 분위기는 얼어버렸다. 아이들은 내 표정과 반응을 빠르게 살폈다. 당황하는 대신 침착하게 되물었다.
“결론이 궁금하구나. 네가 생각하는 결론이 무엇인지 먼저 말해 줄 수 있니?”
아이와 나의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제가 다르다. 아이는 정해진 답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요구하는 거다.
사실 아이의 모습에서 내 오랜 고민을 보았다. 인공지능에 묻고, 답을 듣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여전히 교사는 정답을 묻고, 학생은 그 답을 말하도록 요구받는다. 명쾌한 논리와 딱 떨어지는 답을 요구하는 과학 수업에서 아이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이제 아이들은 삶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정답 없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배움은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즉 아이들은 비판적으로 묻고 창의적으로 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아이들이 정해진 답이 없다는 불안과 모호함을 견뎌내고, 다르게 묻는 힘을 기르도록 안내해야 한다.
어린이 철학의 선구자 가렛 매튜스는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입으로 읊어주고 기록해주어 그 말을 ‘살려 내는 것’이라 했다. 교사와 나누는 아이들의 말속엔 보물 같은 삶의 물음들이 있다. 철학적 대화는 그 투박한 물음을 삶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번역하고, 자기만의 이유와 답을 찾아가게 한다. 이 대화의 시작에 그림책은 좋은 소재가 된다. 그림책에서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언어가 된다. 글과 그림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 사실과 의미 사이, 이 사이들의 여백엔 답이 정해지지 않은 삶의 물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처럼 그림책을 활용한 교실 속 철학적 대화는 교사와 아이들이 더 나은 사고를 배우는 ‘탐구 공동체’가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