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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Oct 24. 2021

있는 대로 먹는 아침

부자가 되면, 무언가를 먹을 때 끼니당 가격을 계산하지 않게 될까?

여름 동안에는 가스불을 쓰지 않고 있는 대로 먹는 아침이 많았다. 이제 사계절이 제철이 되어버린 듯한 방울토마토와 전날 쪄둔 단호박을 그릇에 담고, 동거인이 사 온 아보카도의 껍질을 발라 썰었다. 나초칩은 산책 갔던 골목의 동네 마트에서 기념품으로 구입한 것이다. 보이는 대로 차린 듯 허술해 보이지만 사실 끼니당 밥값으로 계산해 보면 평소보다 훨씬 비싼 상차림이다. 


수입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 둘이 사는 집에서는 공과금 다음으로 식비가 큰 부담이다. 전염병 시국이 되고 나서는 집밥에 더 전력하게 되어 식비가 조금 줄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저축이 달라질 만큼의 변화는 아니었다. 식비는 여전히 동거인과의 공동 생활비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쓰는 항목이기에 가계부를 꼼꼼하게 기입하여 매달 식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생긴 습관이 있다. 식재료를 구입하고 요리를 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끼니당 식비를 계산해 보는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의 영향을 받지만 보통 1인당 한 끼에 3천 원을 넘기면 비싸다고 느끼게 된다. 좀 더 푸짐하게 먹는 점심이나 저녁식사는 느슨한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하더라도,  단지 아침을 시작하기 위해 공복을 채우는 먹이라면 좀 더 예산에 깐깐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자는 동안에 비어 있던 속에 넣는 것은 혈당이 낮은 음식이어야 하기에, 건강한 먹이여야 한다는 고집도 버릴 수 없다. 


건강한 아침 식단 중에서 가장 저렴한 것은 오트밀 죽이다. 오트밀 분량을 1인분 40g으로 넉넉하게 잡아도 여기에 추가하는 두유나 우유를 포함한 가격이 5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집에서 구운 통밀빵과 계란 한 알은 1천 원 이내(계란 한 알이 오트밀 1인분 만큼의 가격), 나머지는 아무리 보태도 1인분에 2천 원 정도. 오늘 아침은 단호박과 아보카도의 값만 더해도 2천 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나 끼니당 가격 따지기를 한다고 해서 이 먹이를 즐기는 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식비를 조절하는 입장에서 의무로 생각할 뿐이다. 


단호박, 토마토, 아보카도, 두유, 나초칩까지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나초를 제외하면 모두가 건강에 좋은 먹이이기도 하다. 끼니당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맛을 즐기며 먹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두유 한 팩은 500원 정도. 두유 하나로 때울 수도 있는 아침인데 너무 호화롭게 먹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뭐 어떠한가. 다채로운 감각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조금 다를 거라고 믿는 수밖에. 나를 도닥이면서도 생각한다. 부자가 되면, 무언가를 먹을 때 끼니당 가격을 계산하지 않게 될까?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로또 1등에 당첨이 되어도 이 습관은 버리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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