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한국식 아파트 건축비평적 시각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아파트 건축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 모순이다.
그런데, 차분히 보면 우리나라 아파트도 한때는 여러가지 도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뭐 굳이 억지로 찾아내려 하면....
그중에 가장 상징적인 곳이 있다. 가장 비싼 아파트(?)였던, 그리고 재건축이 되면 가장 비싼 아파트가 될 지역인 압구정의 거대 단지.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의 범주를 넘어서,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국가 주도의 주거정책과 민간 건설자본의 결합이 만들어낸 복합적 산물이다. 이들은 단순히 주택을 공급한 것이 아니라, 당대 한국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규정하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결정짓고, 사회적 위계를 재구성하며, 그 미학적 형식 속에 국가 이데올로기까지 담아냈다. 도쿄 히로오(Hiroo)와 같은 도시 속 고급 저층 공동주거지와 비교할 때, 압구정 현대와 한양 아파트는 형태는 비슷하나, 출발의 철학과 도시적 맥락, 사회적 배치, 그리고 문화적 코드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먼저, 건축 철학적 측면에서 압구정 아파트 단지는 매우 한국적인 근대 도시계획의 인공적 총합이라 할 수 있다. 한양과 현대라는 두 민간 대기업이 정부의 주택정책 방향에 발맞추어 개발한 이 단지는 ‘국가-자본 복합체’의 전형이다. 당시의 압구정은 오늘날의 부유층 주거지가 아니라, 도시 확장의 전초기지였으며, 압구정 아파트는 강남 개발의 상징이자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주한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시범 모델이었다. 한양 아파트가 도입한 무량판 구조와 건식 경량벽 체계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라기보다, 유연한 주거 방식과 개별화된 주택 내 삶의 가능성을 실험한 장치였다. 현대 아파트의 경우 벽돌 외장 마감은 당대의 기술적 여건에서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으며, 표준화된 콘크리트에서 벗어나 중산층의 ‘고급화 욕망’을 설계로 형상화한 건축적 응답이었다. (아! 엄청나게 칭찬중인데, 내가 이런 글을 쓴다 한들 그들이 내게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압구정 아파트는 단지의 내부 구성만이 아니라 입지와 배치, 단지 외부로부터의 ‘거리두기’를 통해 신계급을 형성하는 도시적 장치였다. 남향 중심의 동 배치는 일조권이라는 생태적 조건을 가장한 위계의 구조이고, ‘베이’ 방식으로 나열된 전면 방 구조는 동일 평면 속에 주방과 거실, 침실을 서열화하여 주거공간 내에서도 계층성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비싼 아파트에서 도입한 '베이'방식의 입면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샘플이었다. 이러한 물리적 배치는 입주민의 사회적 위상과 분리불안의 심리를 반영하며, 결과적으로 이 공간은 한국 중산층이 자기를 확인하고 타자와 거리를 조절하는 ‘사회적 거주체계’의 핵심이 되었다. 다만 압구정 현대와 한양이 시도한 이런 최소한의 도전은 점차 소멸되고, 미안해서 사용한 현대 아파트의 벽돌외장은 그조차도 원가를 줄이기 위해 사라졌다. 그 결과 200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전국의 아파트는 콘크리트 골조위에 페인트가 전부인 건물들이었다.
딴나라가 무조건 좋다고, 사대주의로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면 우리나라의 아파트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 편하기 때문에 딴나라 사례를 언급한다.
도쿄의 히로오 지역은 이러한 압구정 아파트와 본질적으로 다른 도시적 배경과 철학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히로오는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고급 주거지역으로 진화한 동네다. 단독주택과 저층 아파트가 혼재하며, 도시조직은 자본에 의해 일괄 개발된 것이 아니라 개인 또는 소규모 개발자에 의한 점진적, 유기적 형성의 산물이다. 히로오의 공동주거는 ‘삶의 유연성’에 방점이 찍혀 있으며, 정형화된 ‘베이 구조’보다는 내부 공간의 다양성과 전이공간의 세밀한 구성에 초점을 둔다. 공공성과 사적 영역이 분절되지 않고, 골목과 마당, 작은 상업공간이 혼재하며, 물리적 배제보다 관계의 조정이 중심이 되는 도시 공간이 바로 히로오의 특성이다.
이러한 비교는 미학적 차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압구정 아파트는 외형상 전통적 미감을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무량판 구조는 형태적 유연함보다는 시공성 및 평면 효율에 기초했고, 외장 마감은 기능성보다는 ‘고급화의 시각적 상징’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압구정 아파트는 균질하고 반복적인 외형 안에서 미세한 차등을 통해 위계질서를 내재화한다. 입면의 구성은 반복되나 미묘하게 단지별, 시공사별로 세련됨의 정도가 달라져, 도시 속 ‘고급성’의 등급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구분케 했다. 반면 히로오의 공동주택들은 일견 평범하고 소박하게 보이나, 골목과 담장, 입구의 구성, 창호의 비율, 재료의 질감에서 삶의 흔적과 세심한 미감을 드러낸다. 이는 소비적 미학이 아니라, 정주와 세대교체가 반복되는 공간에서의 장기적 시간성에 바탕을 둔 ‘거주의 미학’이다.
대중문화적 관점에서 압구정 아파트는 1990년대 이후의 ‘강남 신화’의 물리적 기반이자 상징적 장소로 작용한다. K-드라마, 예능, 뉴스 보도 등에서 압구정은 ‘부유함’과 ‘성공’, 때로는 ‘허영’과 ‘퇴폐’의 양면적 이미지로 소비된다. 이는 공간 자체의 건축적 특성보다는 사회적 스토리텔링의 결과이지만, 그만큼 건축이 사회적 담론을 이끄는 기호로 기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히로오 역시 일본의 드라마나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이 공간은 개인의 내면적 갈등이나 가족의 정서적 밀도를 그리는 배경으로 작동한다. 이는 공간이 위계보다는 삶의 분위기와 기억을 호출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일본적 도시문화의 특징을 반영한다.
결국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는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주택공급의 양적 확산 과정에서 민간이 주도한 고급 공동주택의 시작이자 정점이었다. 이들은 단지의 설계와 구조, 마감 등에서 선진 기술을 도입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들이 만들어낸 도시적 코드, 사회적 상징, 그리고 대중문화 속 이미지이다. 반면 히로오는 느리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도시와 삶을 조직하며, 대중적 욕망이 아닌 개인의 삶과 기억의 축적에 기반을 둔 공간을 구성한다. 이러한 차이는 건축이 단지 건설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개인의 삶의 방식과 긴밀히 연루된 실천임을 말해준다. 압구정은 오늘날 재건축의 이슈 속에서 과거 영광의 잔재로 남아 있지만, 그 과거 자체가 한국 건축사에서 단순한 기술 발전의 기록이 아니라, 집단 기억과 사회적 구조, 문화적 기호가 뒤얽힌 건축의 총체적 드라마라는 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도쿄 히로로는 재건축할 마음이 없는 듯 하다. 바보들... 재건축하면 집값이 얼마나 오르는데...그걸 모를까?
#아파트 #압구정 #압구정현대 #압구정한양 #재건축 #도쿄히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