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모험으로 도전한 미학적 탐구
아주 오래 전 강의할 일이 있어서 찾아간 연세대학교에서 독특한 건물을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장식적 건물과 엄청난 캔틸레버 지붕을 가진 건물. 학교의 중심부, 언덕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 쌍의 건축이 서로를 마주 보며 있다. 수십개의 건물이 있는 이 학교에서 숨어있으면서도 과감한 디자인에 눈이 간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건축 형태다.
마주하고 있는 두 건물은 캔틸레버와 일종의 공학적 파사디즘(Facadism) 형태를 취하고 있다. 워낙 특이해서 혹시나 하고 자료나 비평글을 찾아 보았는데 어디에도 없다. 단지 연혁과 개요만 있을 뿐이다. 이런... 없는 자료를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냥 내 관점으로......
루스채플(1974, 김석철)과 학생회관(1968, 김정수).이다 이 두 건물은 서로를 의식한 듯, 그러나 완전히 다른 건축 언어로 그 자리를 점하고 있다. 하나는 땅을 치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규칙적인 레이스 같은 입면으로 반복과 장식 사이를 유영한다. 하지만 이 두 건물은 한국 건축사에서 보기 드문 구조적 실험의 정점을 이루었고, 오늘날 그 잊힌 실험정신의 마지막 흔적처럼 남아 있다.
루스채플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기념성과 초월성을 구현한 건축이다. 그 핵심에는 거대한 캔틸레버 구조가 있다. 언덕 위에 떠 있는 듯한 이 건물의 매시브한 수평성은 그 자체로 공간적 선언이다. 수직적 상승보다는, 무게중심을 뒤로 물리고 날아오르듯 펼쳐지는 수평적 볼륨은 오히려 중력을 역전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성스러운 무게를 가시화한 건축적 언어다. 외부는 무겁고 닫혀 있지만 내부는 하늘을 향한 틈이 열려 있다. 구조는 공간의 본질을 매개하는 철학이 된다.
이에 반해 학생회관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매스의 조형처럼 보이지만, 그 외피는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로 빼곡히 덧입혀진 정교한 장식체계다. 고딕 아치의 반복은 수직적 상승이나 영적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히려 공장 생산의 리듬과 산업화된 반복의 기계성을 드러낸다. 아치라는 고전적 형식은 이곳에서 숭고의 상징이 아니라, 표면을 덮는 장식적 기호로 변주된다. 그러나 그 장식성은 역설적이다. 기술적 통제를 통해 생산된 결과물이 오히려 손맛 없는 과도한 미감으로 읽힐 위험도 내포한다.
루스채플이 무게와 침묵, 상승과 기억의 수평성을 말한다면, 학생회관은 가벼운 조립의 질서, 비가시적 기술의 장식화를 제안한다. 루스채플은 구조를 숨기지 않고 공간에 드러내는 반면, 학생회관은 구조를 외피 아래 숨긴 채, 반복적 패턴으로 감춘다. 마치 기계가 만들어낸 표면 너머로 인간의 사유가 잔존하는지를 묻는 듯하다. 그 차이는 기술과 공간, 구조와 장식의 관계를 정반대에서 풀어낸 두 건축가의 철학적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장소성 또한 두 건물을 흥미롭게 만든다. 루스채플은 캠퍼스의 가장 상위 공간, 언덕 위에 올라간 배치부터가 상징적이다. 그것은 보는 건축이 아니라, 오르는 건축이며, 도시를 내려다보는 존재적 자리를 점한다. 반면 학생회관은 루스채플과 마주한 평지에 놓여, 건축적 기념성이 아닌 일상적 기능성을 지닌 건축으로서 위치한다. 하지만 그 입면이 만들어내는 장식적 인상은 오히려 루스채플보다 더 직접적으로 시선을 끈다. 이는 공간적 위계와 조형적 과시가 역전되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실질적으로 종교와 정신의 장소는 언덕 위에 있지만, 시각적으로 더 강한 자기표현은 언덕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이 아이러니는 단지 조형적 차이만이 아니라, 한국 근대 건축이 기억과 기능, 기념성과 일상 사이에서 어떤 긴장을 품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두 건축이 품고 있던 구조적 모험과 미학적 도전은 1980년대 이후 한국 건축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개발 모델 속에서, 건축은 수익의 도구이자 조형의 외피로 전락해 갔다. 구조적 실험은 위험 비용으로 간주되었고, 건축가는 실험보다는 상업적 조형의 디자이너로 퇴화했다. 루스채플과 학생회관이 한 시대의 건축적 야심을 대표했다면, 그 이후의 수많은 교육시설, 종교시설, 문화시설들은 기능과 형태를 분리하고, 구조와 공간의 통합을 포기했다.
오늘날 루스채플과 학생회관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한국 건축이 잃어버린 감각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이들은 단순히 예배와 학생활동의 장소가 아니라, 건축이 어떻게 구조를 통해 사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루스채플은 구조 그 자체가 공간의 언어가 되는 모델이며, 학생회관은 기술을 통해 장식을 재해석한 역설적 건축이다. 각각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술과 구조를 통해 건축의 의미를 사유한다’는 태도는 공유된다.
한참을 보다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기술도 자본도 모든 것이 좋아진 현재. 우리는 과연 이런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늘날 한국의 건축은 구조를 통해 공간을 말하는가? 기술을 통해 사유를 담는가? 루스채플과 학생회관은 공간이 하나의 철학이자 시대의 언어였던 시절을 증언한다. 그것은 단지 건축가의 야심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건축을 통해 꿈꾸던 시대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더 이상 복원될 수 없다. 남은 것은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해갈 것인가의 몫이다. 건축은 다시 실험해야 하며, 구조는 다시 사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잃어버린 건축의 언어를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