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적응과 10년 주기 리셋: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
“서로 이렇게 무심한데, 독일 사람들끼리는 도대체 어떻게 친구가 되는 걸까?”
독일에 도착해 그들의 문화를 하나씩 체험해 나가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단순한 언어 장벽을 넘어, 그들의 삶의 방식은 내가 익숙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적 규칙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반복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낯선 감각을 익히며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음을 배워야 했다.
그중 가장 낯설고도 인상 깊었던 건, ‘무심함’과 ‘존중’ 사이의 미묘한 거리였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신경을 써주는 것이 배려이고 정(情)이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룸메이트가 아프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타인의 사생활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 배려로 여겨졌다. 내가 피곤해 보이거나 낯설어 보여도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고, 사적인 영역은 철저히 지키는 분위기였다. 룸메이트가 몸이 안 좋아 보여도, 걱정하는 눈치는 있을지언정 먼저 간섭하거나 도와주려는 표현은 조심스러웠다. 처음엔 다소 무심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홈스테이 생활도 다르긴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손님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하고 식사도 함께하며 자연스레 정을 나누지만, 독일에서는 '같이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부엌에서 마주쳐도 몇 마디 스몰토크를 나눈 뒤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웠고, 친해지기 위해 애쓰는 제스처는 오히려 어색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처음엔 다소 거리감 있게 느껴졌지만, 그들의 방식이 억지 없이 자연스러운 관계를 지향한다는 걸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인간관계의 속도와 깊이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몇 마디 나누고 나면 금방 친해지고, 때로는 깊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단순한 인사나 잡담을 넘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지만, 그것이 곧 ‘가까움’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몇 개월 동안 알고 지낸 사람과도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거리감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신뢰가 쌓이면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독일식 인간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나는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던 행동들이 이곳에서는 어색하거나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처음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여러 메뉴를 시켜 나눠 먹자고 했을 때,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반응을 마주쳤다. 나눠 먹는 것은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독일에서는 각자의 음식을 각자 먹는 것이 기본이었고, 나의 익숙한 방식이 오히려 타인의 문화를 고려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한국에서는 '정'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필요를 내 것처럼 챙기고, '개념'이라는 이름으로 상대가 본인 마음과는 반대로 말할지라도 그걸 '눈치'껏 읽고 알아서 '싹싹하게' 해야하는 문화가 있다. 회식에서 피곤해도 자리를 지켜야 하고, 내키지 않는 일도 '분위기'를 위해 웃으며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여겨졌다. "오늘은 이만 먼저 가볼게요"라는 말에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네, 좋은 밤 되세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거절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라 솔직함의 표현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처음에는 이런 거리감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 또한 수많은 시선들에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서로의 사생활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이 문화 속에서,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내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더 건강한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독일 생활 초반은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회적 코드와 인간관계를 익히는 과정이었다.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점차 그들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며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새, 나 역시 타인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고, 내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분위기'와 '개념'을 위해 억지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건강과 비자 두마리 토끼를 잡게 해 주는 외국인청 러닝"
어느 날 영하의 새벽, 나는 독일 외국인청 앞에서 긴 줄에 서 있었다. 한 달 전 제출한 비자 서류는 ‘미비’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반려되었고, 불행히도 담당자는 새로운 예약 날짜를 제시하지 않았다. 새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며칠째 온라인 시스템은 만석이었고, 빈 자리를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상황은 시급했고, 더 이상 온라인 예약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결국, 나는 당일 접수를 위해 외국인청에 직접 가서 기다리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들이 모두 내가 가야 할 외국인청 건물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외국인 동지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서 있었던 것이다. 모두 절박했고, 모두 같은 이유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언 발을 동동 구르며 몇 시간을 기다리던 중, 마침내 문이 열렸고, 사람들은 일제히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동지가 경쟁자로 돌변한 순간이었다. 나는 중간쯤 서 있었지만, 저질 체력 탓에 내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 순번을 강제로 양보해야만 했다. 간신히 사무실 앞에 도달했지만, 직원은 내 바로 앞에서 줄을 끊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그가 건넨 것은 작은 종이쪼가리였다. 그 위엔 외국인청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몇 시간을 얼어붙은 채 버티고, 전력질주까지 했지만 내가 얻은 건 그 작은 종잇조각 하나였다. 누군가는 “이 정도는 유럽에선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추위 속에서 돌아서며 나는 너무도 뚜렷하게 느꼈다.
이 시스템은 나 같은 외국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또 하나의 '처리 대상'일 뿐이었다.
절차는 느리고, 예외는 없으며, 도움은 거의 없다. 예약 시스템은 늘 만석이고, 새로 고침과 클릭 경쟁이 일상이다. 서류가 하나라도 빠지면 몇 주, 혹은 몇 달 뒤에야 반려 통보가 온다. 이메일 응답은 한 달에서 두 달이 걸리기 일쑤다. 한국에서는 무언가를 요청하면 빠르게 응답이 돌아오기에,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기다리면서 느낀 답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많은 서류가 여전히 우편으로만 발송되며, 우편물이 늦어지면 전체 일정이 꼬이기 일쑤다. 더욱 문제는 가끔 같은 질문에도 담당자마다 답이 달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내가 직접 법규를 찾아보고 여러 부서에 문의해야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갓 독일에 도착한 외국인에게 "본인은 영어를 못하니, 독일어로 설명하라"고 하는 황당한 직원 서비스까지.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나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독일의 ‘철저함’은 결코 ‘효율’을 의미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유연성과 실용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빠르고 실용적인 행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서류 하나, 절차 하나에도 문화가 담겨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우는 중이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수십, 수백개가 넘는 지원을 했었다. 독일의 주택난은 예상보다 더 심각했고, 언제까지 머물 지 모르는 외국인에겐 더더욱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절 메일을 확인하는게 매일의 루틴이 되었다. 처음 몇 번은 메일 제목에 설렜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점점 이미 알것같은 대답에 클릭도 망설여졌다. “죄송하지만, 이번엔 다른 사람을 세입자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십번 넘게 반복된 거절임에도 불구하고, 저 한 문장은 내 하루를 망치기 충분했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첫 번째 벽은 ‘주소’였다. 관청에 주거지 등록이 되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으며,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었고, 은행 계좌가 있어야 월세를 이체하거나 하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소가 없이는 계좌를 만들 수 없고, 계좌가 없이는 또 주소 등록에 필요한 계약조차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홈스테이였다. 비록 내 집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집주인이 정식으로 주소지 등록을 도와주었고, 그 덕분에 겨우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여러 장의 서류를 들고 관청을 오가던 날, 드디어 발급받은 주소 등록 확인서(Anmeldung)를 손에 쥐고 한참을 바라봤다. 악순환을 끊고 드디어 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춘 기분이었다.
하지만 홈스테이 생활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집주인은 거의 매일 밤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고, 바깥에서 나는 왁자지껄한 소리는 나를 더더욱 고독감으로 몰았으며, 온전한 사생활이란 없었다. 나는 다시 집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주소지 등록이 가능한 집은 드물었다. 독일에서는 세입자의 등록을 위해 집주인의 공식 허락이 필요하고, 그 정보는 행정 시스템에 등재된다. 이로 인해 세금이나 기타 책임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집주인들은 등록 자체를 꺼렸다.
어떤 이는 아예 “Anmeldung 안 됩니다”라고 광고에 적어 두었다. 등록이 되지 않으면 나는 다시 계좌도, 보험도, 체류 연장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수백 통의 메일을 보내고, 수십 곳의 하우스 투어를 다녔지만, 대부분은 답조차 오지 않았다. 때로는 소개서를 써야 했고, 내 체류 기간과 재정 상황관련 문서를 제출해야했다. ‘좋은 세입자’가 되기 위해 내 존재를 설득해야 하는 삶. 그게 독일 정착 초반의 현실이었다.
아 모든 시도 끝에, 결국 정말 운좋게 도움을 받아 한 곳에서 작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주소를 이전한다는 '움멜둥'까지 마쳤을 때, 그 조용한 기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이 한 줄의 주소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말 그대로 나의 삶이 시작될 수 있는 최소 단위였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했던 ‘주소’와 ‘계좌’라는 시스템이, 이곳에서는 그렇게나 많은 거절과 고비를 넘어야만 얻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이름으로 된 우편물이 집으로 도착하고, 내 계좌에서 월세가 자동이체 되는 순간에조차 작게 감탄한다. ‘아, 내가 이제야 여기 사람으로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