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가 되었을 때,
업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항상 새로운 스타일의 고객들에게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고객에게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를
한지와 마분지로 나눠
물에 얼마나 젖느냐에 비유하곤 했는데,
내가 너무나 한지라는 걸 2년 차에 알게 되었다.
5년 차에는,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때와 비교할 때,
초반의 나는 별 같은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반짝이고 빛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닌,
뾰족 뾰족하다는 점에서 별이었다.
일을 처리하는 게 요란스러웠고
실수가 너무 티가 났기에.
그리고 5년 정도 많은 일들과 사람을 겪었으니
나는 깎이고 깎여 동그라미가 되었다고 믿었다.
이제 어떤 일이든 둥글둥글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정말 좋았다.
Q : 한지와 마분지에서 지금은 마분지가 됐는가?
A : 아니, 마분지의 발끝도 못 갔다.
대신 나는 빨리 마르는 한지가 되었다.
내가 한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땐 마분지가 너무 부러웠고
나는 왜 저렇게 살 수 없는지 항상 슬퍼했다.
그러나 부러워하고 슬퍼하는 것의 공통점은,
아무리 부러워하고 슬퍼해도 변하는 건 없다는 것.
결국 내가 정신 차리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가 한지처럼 물에 흠뻑 젖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스스로 인지하면,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다른 곳으로 가서 공기를 순환시켰고,
젤리와 초콜릿등으로 당을 충전하며
그 순간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구 채우면서
한지를 빨리 말려버리는 방법을 깨우친 것이다.
마분지가 아무리 부러워도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찌하겠는가?
빨리 마르거나, 물에 젖었을 때 완벽한 접착력 등
한지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며
나를 위한 방법들을 찾아내 버텨냈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꼭 마분지로 태어날 거다.)
Q : 별과 동그라미에서는 완전한 동그라미가 됐는가?
A : 동그라미가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게 되었지만..
어쨌든 굴러는 가니 괜찮다.
동그라미가 되면 둥글둥글하니
고객 또는 힘든 일을 처리할 때
둥글둥글하게 잘 해낼 거라 믿었는데
이상하게도 매끄럽게 넘어가질 못하고
계속 어딘가에 걸려 6년 차가 되어도
버거운 순간들이 존재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타이어 같은 동그라미가 되지 못했다.
별에서 매끄러운 동그라미로 깎인 게 아니라
별의 뾰족 길이가 각각 다르게 깎여
굴러는 가는데...
힘으로 밀어서 겨우 굴러가는
동그라미도 별도 아닌 괴상한 모양이었다.
괴상한 모양의 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빨리 해결은 둘째 치고, 빨리 털어내질 못했다.
그곳에 마음 쓰고 집중하느라
다른 일에 지장을 줄 때마다,
내가 완전한 동그라미가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좌절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신입이 아니고
하나의 일만 물고 늘어지기엔 연차가 쌓여버렸다.
고객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까지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상황마다 매번 좌절할 수는 없었기에
난 당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고, 그리고 선택을 했다.
일처리를 백 프로 완벽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곳에 미련 가득 계속 머물고 있는 게 아닌,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였기에
‘네가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는 거였다'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어느 정도 선에서 나와 타협하고
괴상한 모양을 밀어서
다음 업무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이상한 모양이라도 굴러가면 된 거지! “
나에 대한 믿음을 내가 직접 경험한 순간이라
이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감동이 올라오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참 쉽지 않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렸을 땐,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패기로 가득했지만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일이고 삶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업무 속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직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