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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진진 Dec 19. 2024

한지와 마분지, 별과 동그라미


2년 차가 되었을 때,

업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항상 새로운 스타일의 고객들에게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고객에게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를

한지와 마분지로 나눠

물에 얼마나 젖느냐에 비유하곤 했는데,

내가 너무나 한지라는 걸 2년 차에 알게 되었다.


5년 차에는,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때와 비교할 때,

초반의 나는 별 같은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반짝이고 빛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닌,

뾰족 뾰족하다는 점에서 별이었다.

일을 처리하는 게 요란스러웠고

실수가 너무 티가 났기에.


그리고 5년 정도 많은 일들과 사람을 겪었으니

나는 깎이고 깎여 동그라미가 되었다고 믿었다.

이제 어떤 일이든 둥글둥글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정말 좋았다.



Q : 한지와 마분지에서 지금은 마분지가 됐는가?

A : 아니,  마분지의 발끝도 못 갔다.

     대신 나는 빨리 마르는 한지가 되었다.


내가 한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땐 마분지가 너무 부러웠고

나는 왜 저렇게 살 수 없는지 항상 슬퍼했다.


그러나 부러워하고 슬퍼하는 것의 공통점은,

아무리 부러워하고 슬퍼해도 변하는 건 없다는 것.

결국 내가 정신 차리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가 한지처럼 물에 흠뻑 젖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스스로 인지하면,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다른 곳으로 가서 공기를 순환시켰고,

젤리와 초콜릿등으로 당을 충전하며

그 순간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구 채우면서

한지를 빨리 말려버리는 방법을 깨우친 것이다.


마분지가 아무리 부러워도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찌하겠는가?

빨리 마르거나, 물에 젖었을 때 완벽한 접착력 등

한지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며

나를 위한 방법들을 찾아내 버텨냈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꼭 마분지로 태어날 거다.)



Q : 별과 동그라미에서는 완전한 동그라미가 됐는가?

A : 동그라미가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게 되었지만..

     어쨌든 굴러는 가니 괜찮다.


동그라미가 되면 둥글둥글하니

고객 또는 힘든 일을 처리할 때

둥글둥글하게 잘 해낼 거라 믿었는데

이상하게도 매끄럽게 넘어가질 못하고

계속 어딘가에 걸려 6년 차가 되어도

버거운 순간들이 존재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타이어 같은 동그라미가 되지 못했다.

별에서 매끄러운 동그라미로 깎인 게 아니라

별의 뾰족 길이가 각각 다르게 깎여

굴러는 가는데...

힘으로 밀어서 겨우 굴러가는

동그라미도 별도 아닌 괴상한 모양이었다.


괴상한 모양의 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빨리 해결은 둘째 치고, 빨리 털어내질 못했다.

그곳에 마음 쓰고 집중하느라

다른 일에 지장을 줄 때마다,

내가 완전한 동그라미가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좌절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신입이 아니고

하나의 일만 물고 늘어지기엔 연차가 쌓여버렸다.

고객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까지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상황마다 매번 좌절할 수는 없었기에

난 당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고, 그리고 선택을 했다.


일처리를 백 프로 완벽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곳에 미련 가득 계속 머물고 있는 게 아닌,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였기에

‘네가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는 거였다'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어느 정도 선에서 나와 타협하고

괴상한 모양을 밀어서

다음 업무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이상한 모양이라도 굴러가면 된 거지! “

나에 대한 믿음을 내가 직접 경험한 순간이라

이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감동이 올라오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참 쉽지 않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렸을 땐,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패기로 가득했지만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일이고 삶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업무 속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직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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