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 시, 고객 요청사항을 재확인하기 위해
"유선으로 가습기 요청 주셨는데 맞으신가요?"
여쭤봤고,
고객은 무선 가습기도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도 모르게 ‘호텔에 무선 가습기가 있었나?’
잠시 생각하는데 다행히 고객이 바로
"아아! 맞아요. 전화로 요청했습니다."
하면서 웃음이 터졌고,
고객과 나는 체크인 내내 같이 웃었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을 많이 적었지만
내가 호텔 근무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좋은 고객과 좋은 순간들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
돌아보면 메마른 인류애 속에 꽃이 필 때가 있었다.
하루는 책상파손으로 인해
고객이 다친 것 같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당시 근무 담당자였던 나는
그날따라 여기저기 발생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세세하게 내용을 파악하기엔
이미 시간이 많이 소요 돼버렸다.
고객이 괜찮은지 우선 확인이 필요했기에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객실에 방문한 적이 있다.
커플 고객분이었는데 문을 열어준 여자분께
괜찮으신지, 얼마나 다쳤는지 물었고,
여자고객과 난 서로 바라보며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여자분 뒤에서 남자분이,
계속 내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접니다.. 아니요.. 제가 다쳤습니다… 제가 책상에 앉았다가 부서졌습니다.."
"부서진 건 배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전데... 제가 다쳤는데 크게 안 다쳐서 괜찮습니다"
그제야 들렸다.
다친 사람은 여자분이 아니라 남자분이었던 것이다.
여자분은 “많이 안 다쳤어요"로 시작하여
대신 대답을 해준 거였는데
대화가 한동안 자연스럽게 이어져버린 것이다.
난 너무 놀라서,
"아! 고객님께서 다치셨군요!!!! 어느 분이 다치셨는지 먼저 여쭤봤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서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셋은 한참 동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책상 화장대는 정첩 부분이 빠진 거라
수리가 가능했고 고객도 등이 살짝 긁힌 건
괜찮다고 하여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고객들과 더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지만,
내가 메마른 인류애 속에 꽃이 필 때의 예를
이런 사소한 장난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건 고객과 직원이 함께
웃음이 터지는 상황은 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관계에는
항상 약간의 경계가 존재한다고 보는데
고객과 직원사이뿐만 아니라
길 가다 만나는 사람들 간의조차도
보이지 않는 경계는 존재한다고 생각을 한다.
이렇게 장난처럼 보이는 순간이
일상 속에서 만나는
서로의 경계와 긴장이 풀리는
선물같은 순간이었기에,
물고기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에 잠깐 올라오듯
나는 아마도 사람, 상황 관계없이
고객과 함께 웃음이 터지는
산소공급 같던 그 부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소소한 행복을 만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모여서
6년을 근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