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땅속이 답답하지 않다.

(이대역 벽면에 붙어있던 글의 제목)

by 모진진


이대역 벽면에 붙어있는 글의 제목이다.

제목이 눈에 들어와 얼른 보려는데

지하철 문이 닫혀버려서 내용은 읽지 못했다.


그 제목이 계속 맴돌길래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보니

유심칩 대란으로 지방에 계신 부모님 휴대폰을 해결하려다

완전히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올라온 게 걸렸다.


유심칩 교체는 당연히 어려웠고

유심보호서비스라도 가입하려는데

전화연결은 쉽지 않고, T어플도 비밀번호를 찾다가

결국 대리점에 가서 겨우 가입했다.


문제가 생기면 심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 않았고

나만 애쓰는 것 같아,

결국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집으로 가는 길에

"지렁이는 땅속이 답답하지 않다"는 문장을 봤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데

내 상황에 연결을 하니 이상하게 또 연결이 됐다.


어쩌면 땅속에서 지렁이들은

크게 불편하지 않고 편한 공간이었는데

내가 답답하다고 느껴 나의 욕심에

억지로 땅속에서 꺼낸 걸까 생각이 들었다.


꼭 지금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순간과 관계에서

혹시 내 욕심이 힘들게 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모든 주어를 나로만 생각했다.

내가 지렁이였던 시절도 있었을 텐데

그 시절을 생각 못하고..


결국 내 욕심이 관여한 순간들이

분명 있었기에

문장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


사실, 화를 내고 온 게 마음에 걸려서 이런다.


나의 두 손에는

반찬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은 내게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을 가득 쥐어주었고,


지금 난 두 손도, 마음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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