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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Jan 23. 2017

이야기 셋,  스타벅스의 진화는 무죄.

시애틀에는 스타벅스 테마파크와 같은 어마 무시한 매장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시애틀에 머무는 내내 스타벅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YOU ARE HERE' 머그컵을 사기 위해, 혹시나 다른 디자인의 스타벅스 카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지어는 마시는 물을 살 때도 스타벅스로 향했다.

   

  나 같은 스타벅스 팬에게 시애틀은 천국이다. 스타벅스의 역사가 시작된 1호 점도 있고, 과장을 조금 보태면 거의 매 블록마다 초록색 사이렌 간판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본사인 Support center도 시애틀에 있다. 본사 근처에 있다 보니 다양한 신제품과 콘셉트 매장, 서비스를 제일 먼저 도입하고 테스트하는 것도 시애틀이다. 말 그대로 스타벅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가 시애틀인 것이다.


  이렇게 스타벅스(가 전부는 아니지만)로 가득 찬 시애틀에서 가장 유명한 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있는 1호점이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성지처럼 떠오르는 매장이 있다. 바로 STARBUCKS RESERVE ROASTERY & TASTING ROOM이다.


WELCOME TO "THE STARBUCKS-LAND".


"너한테 꼭 추천하고 싶은 매장이 있어. 여기에서 몇 블록만 올라가면 되니까 꼭 가봐!"


  스타벅스 1호점에서 대화를 나눴던 바리스타 Christie가 추천한 "STARBUCKS RESERVE ROASTERY & TASTING ROOM"(1124 Pike Street, Seattle, WA, 이하 "스타벅스 로스터리")은 1호점에서 도보 15분~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Flagship 매장이다. 2014년 오픈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자 첫 Roastery 매장이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관심을 받았었다. Roastery 매장답게 가장 다양한 블렌드를, 가장 신선하게 마실 수 있고, 스타벅스에서 제공하는 모든 방식의 추출법(Espresso machine, Pour-over, Chemex, Siphon, Clover brewed, Coffee press)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매장이다.

스타벅스 로스터리에서는 스타벅스에서 가능한 모든 추출법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1주일 이상 판매되지 않은 원두는 그대로 버려진다는데, 버리는 원두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와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짧은 탄성이 나온다. 시각과 후각, 청각까지 모든 걸 압도한다. 어마어마하게 큰 매장이 커피 향기로 가득 차 있다. 구리 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로스터 머신과 로스팅되자마자 관을 따라 원두들이 이동하는 소리, 원두를 글라인딩하고 머신들이 커피를 추출하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곳저곳 시선을 옮겨가며 매장을 둘러봤다. 마치 테마파크에 온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이 만들어 내는, 테마파크 특유의 기분 좋은 설렘과 행복이 느껴졌다. 어트랙션 대신 다양한 조합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커피와 음료가,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음악 대신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와 기분 좋은 향이 그 자리를 채운다. 미키마우스나 로티는 없지만, 매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바리스타와 고객 모두, 밝은 미소를 띤 채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했던 사이렌이, 노래가 아닌 커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사이렌의 유혹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곧장 카운터로 가 스타벅스 로스터리에서만 구할 수 있는 스타벅스 카드를 자유이용권처럼 챙겨 들고 스타벅스 랜드로 뛰어들었다.

스타벅스 로스터리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스타벅스 카드! 자유이용권처럼 쓰기 위해 거금 $100를 충전했다.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가 아냐.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마어마하게 큰 로스터 머신과 그 머신에서 커피 보관통까지 이어진 구리관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로스팅 카페가 많아지면서 로스터 머신을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스타벅스 로스터리에 있는 크기의 머신은 처음이었다. 스타벅스 로스터리에서는 세계 최고의 로스터 머신 업체 중 하나인 Probat™ 社의 로스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로스터 머신마다 방대한 양의 원두가 로스팅되고 있었고, 마스터 로스터리가 모니터를 통해 온도나 로스팅 시간 등을 체크하고 컨트롤하고 있었다. 매장 내 가장 큰 로스터 머신 옆에 서서 커다란 배치에서 원두가 물결치며 볶아지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퍼져 나오는 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로스터 머신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는 마스터 로스터리(상)와 오늘 로스팅 된 원두를 소개하는 (공항에나 있을 듯한) 현황판.


  잠시 커피 향에 취해 멍하니 로스터 머신 옆을 지키고 있던 중에 거대한 마라카스를 흔드는 것 같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로스터 머신에서 구워진 원두는 구릿빛 관을 따라 중앙 테이스팅 바 가운데에 있는 원두 저장소로 옮겨지는 데 이때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따라 나도 자연스레 다양한 커피와 티를 맛볼 수 있는 바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장의 가운데 놓여 있는 바 테이블은 수많은 커피 머신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를 찾을 겸 바 테이블을 빙글 한 바퀴 둘러봤다. 한국의 마스트레나와는 다른 스타벅스 전용 에스프레소 머신, 리저브를 론칭하기 위해 매입했던 클로버 머신, 추출 과정에서 영롱한 붉은빛을 내기 때문에 보는 즐거움도 선사해 주는 사이폰과 핸드드립을 위한 Pour-over-cone과 케멕스가 바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머신만큼 수많은 자리가 있었지만 몇 바퀴를 돈 후에야 겨우 한 자리를 찾았다. 의자 위에 가방만 올려진 자리가 하나 있어 조심스레 가방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TEAVANA 전담 바리스타! 주문한 차에 대한 설명, 물 온도와 물의 양까지, 자세하고 섬세하게 설명하며 티를 우려냈다.
매장 중앙의 바 테이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짐을 풀고 커피를 주문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수많은 고민 끝에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Mirco-blended 원두에 리저브의 상징과도 같은 클로버 머신 추출법을 택했다. "MOJO"를 찾는 바리스타를 찾아가 음료를 받아 들고 와서 향을 맡았다. 흙내음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커피는 마시지도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걸 보고 있던 옆 자리의 남자가 "여기는 처음 와본 거야?"라며 말을 건네 왔다.


한국의 클로버 머신보다 더 큰 스타벅스 로스터리 클로버 머신.
저 커피가 내 커피다. 한국과 달리 한 번 옮겼다 따라 주던데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해 아쉬웠다. 아마도 음료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겠지.?

  옆에 앉아 있던, 가방을 치워 나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준, 두 친구는 United Airline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이었다. 직업 덕분에 미국의 이 곳 저곳을 다니고 있는데 비행 스케줄이 겹칠 때면 항상 같이 맛집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오늘도 아침에 시애틀에 도착해 저녁 식사 전에 커피를 마시러 이 곳에 들렸다고 했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됐냐는 그들의 질문에 시애틀에 온 이유가 스타벅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왜 이 곳에 왔는지 되물었다.


"우리는 시애틀에 오면 항상 저녁을 먹기 전에 이 곳에 와서 새로 나온 커피를 마셔."

"시애틀에 카페가 많은 데 왜 꼭 여기를 찾는 거야?"

"글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러게, 알 것 같아."라고 답했다.


  이 곳에서 커피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게 핵심이지만, 이 곳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매장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커피를 오감으로 느꼈다. 눈으로, 코로, 입으로, 그리고 매장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리고 그 커피에 대해 사소하거나 전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렇게 특별한 경험과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게, 그 친구들도, 나도 같이 느끼고 있는 이 곳을 특별하게 해주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커피 향과 커피 맛에 둘러 쌓이기 위해, 테마파크에 놀러 가듯이 놀러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타벅스 로스터리다.

잘 참았어, 지름신.


  디즈니랜드, 에버랜드, 롯데월드에 가면 ,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코스는 지름신과의 싸움이다. 대부분의 테마파크들은 입구나 출구 바로 옆에 기념품 샵을 두기 때문이다. 그냥 테마파크에서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데, 여기는 스타벅스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닌가! 입구, 혹은 출구 바로 옆, 그곳에 한정판 굿즈가 진열되어 있다. 저녁 예약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지만, 조금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맛있는 커피와 즐거운 수다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굿즈 스토어로 향했다.


  사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이미 1호점에서 수많은 기념품을 샀지만, 자유이용권에 충전한 Credit이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다양한 커피 머신과 머그, 글라스, 원두 등등,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모든 용품을 사들고 집에 가서 카페처럼 꾸며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코백이나 앞치마 같이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굿즈도 많았다. 게다가 오직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굿즈들을 구경하느라 사진 찍는 것도 잊었고, 지름신과 싸우느라 여러 가지 굿즈를 들었다 놨다 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 조그마한 머그컵 하나, 스쿱 하나, 원두 하나만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이 정도면 됐다, 지름신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스타벅스 로스터리에서의 추억을 마무리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승리였다.

사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지만, 머그 하나 스쿱 하나, 원두 하나만 추가 구입! 잘 참았어, 지름신.

스타벅스 테마파크 "스타벅스 로스터리", 한국 도입이 시급합니다.


  공간 비즈니스에 있어 제일 중요 한 건 차별화된 경험이다.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 곳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여기가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하게 하는 명확하고 유니크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스타벅스 로스터리는 매우 성공적인 공간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스타벅스 리저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원두를 매개로 원두가 어떻게 로스팅되는지, 로스팅된 원두를 어떠한 방식으로 추출할 수 있는지, 어떤 푸드와 함께 하는 게 좋은지 등등 스타벅스에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로스터리'는 무언가 특별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 특별한 경험은 기분 좋은 추억이 되어 그 경험을 다시 갈구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있다.


  최근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 CEO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밝힌 전략 중 하나는 스타벅스 로스터리 매장을 전 세계에 25개까지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스타벅스 랜드를 전 세계에 퍼트려, 자연스레 스타벅스의 커피 문화에 녹아들게 하려는 야심 찬 한 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 매장 중 하나가 반드시 한국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가 느낀 특별함을 나누고 싶은 만큼 하루라도 더 빨리.


  자유이용권을 끊고 들어가 호갱님이 되어 줄 준비는 이미 끝났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같은 디자인을 쓰지만, 이걸 처음 봤을 때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같은 디자인이 들어오길 바랐다.
하루 빨리 한국에서도,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기 위해 모일 수 있는 로스터리 매장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본 게시글은 독립 출판물로 제작하기 위해 작업 중인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기의 초고입니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문의사항은 별도로 연락 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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