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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Nov 13. 2016

이야기 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누가 뭐래도 시애틀 최고의 관광 명소는 바로 여기다.

  시애틀에서 관광객과 시애틀라이트가 가장 많이 어우러져 있는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 없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피크 플레이스 마켓)을 선택한다. 매년 천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이 명소는, 관광객들에게는 시애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며, 시애틀 사람들에게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의 일상 속 한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시장이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시애틀 관광 책자에 항상 제일 먼저 소개되는 명소, Pike Place Market. 항상 사람으로 붐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1907년 8월, 시애틀의 1st Avenue와 Pike Street가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졌다.

  그 당시 시애틀의 농부들은 도매상들에게 의존하여 농작물을 판매했다. 농사를 짓기에도 바쁜 탓에 직접 거래를 할 염두를 내지 못했던 탓이다. 농부들은 도매상이 판매한 총 금액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받는 방식으로 계약했고, 그렇게 때문에 도매상의 능력에 따라 수익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농부는 많은 돈을 벌기도 하고, 어느 농부는 단 한 푼도 벌지 못할 만큼.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도매상의 거래에 있어 우위를 점하게 됐고, 농부들의 수익은 점차 나빠져만 갔다. 그러다 몇몇 농부들 사이에 도매상들이 농부들에게 커미션을 주지 않고 모든 수익을 챙긴다는 루머가 퍼졌고, 이에 불만을 품은 농부들이 시애틀 시정부에 요청하여 시작된 시장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 졌고, 100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상징하는 붉은 색 Pulbic Market Center 네온 사인 옆에 "MEET THE PRODUCER"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가 가장 높은 곳,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건 이러한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 하는 특별한 곳이다.
해질녘의 Public Market Center. "MEET THE PRODUCER"라는 말 그대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공영시장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몇몇 식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점이 이미 영업을 마쳤거나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싱싱한 농작물과 해산물, 밝은 미소와 생기 넘치는 시장 상인, 장바구니를 한 보따리 안고 가는 손님을 기대했던 나에게 남은 건 텅 빈 시장과 조금 이른 저녁이나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대기 중인 몇몇 관광객 뿐이었다.


금일 영업을 마치고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상인들(위), 영업이 끝난 시장을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아래)


  텅 빈 시장을 걸었다.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으나 이대로 그냥 떠나기엔 아쉬웠다. 아무도 없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돌아다녀 보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마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때문일거다. 탕웨이와 현빈이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대화를 나누다 고스트 투어를 하는 관광객과 마주치는 장면처럼 우연한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텅빈 시장을 돌아 다녔다. 영화처럼 "서프라이즈!"한 추억을 만들진 못했지만, 느긋하게 내 템포에 맞춰 이곳 저곳을 둘러 볼 수 있었다. Water Front에 앉아 엘리오트 만(Elliott Bay)의 저녁 놀을 느긋하게 즐기고, 깔끔하게 정리된 Market Front 테이블에 걸터 앉아 매일 아침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의 모습을, 그 곳에서 시애틀라이트처럼 장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상인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것처럼 종이에 포장된 생선을 상인이 나에게 던져 준다. 저녁에 먹을 싱싱한 연어다. 부위는 버터플라이가 좋을 것 같다. 곁들일 야채로 콜리플라워와 아스파라거스도 조금 산다. 식탁에 생기를 더해줄 꽃도 한 다발 산다. 내가 이곳을 오며 만났던 시애틀라이트처럼.


  아주 잠깐이었지만,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비록, 내가 직접 연어 스테이크를 해 먹을 순 없지만, 오늘 저녁에 예약해둔 레스토랑에서 연어를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영업이 끝난 시장을 걸어 다니는 것도 매력적인 여행법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여행자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다음 날 아침, 어제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조금 이른 시간에 다시 한 번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찾았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내 상상 속 모습 그대로 활기찬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시장의 한 쪽 면을 가득 채운 싱싱한 수산물들, 반대편을 가득 채운 수많은 꽃다발과 농산물.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향해 걸어오며 만났던 시애틀라이트들이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다녀왔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색과 향으로 매대를 채운 상품들 뿐만 아니라 매의 눈으로 가족의 식탁을 위해 위해 장을 보고 있는 사람, 자신들의 상품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어필하는 상인, 시장에 있는 모든 게 신기한 어린아이들, 사진 한 장으로 이 순간을 남기려는 관광객까지. 이렇게 다양한 사람과 상품들이 한데 어우러져, 내가 상상해왔던 활기찬 시장을 완성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Pike Place Market, Public Market Center. 내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다!
"You Touch You Buy!" 진짜 만지면 사야하는지 시도해 보려 했으나, 난 A형이었다...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 활기찬 시장의 일부분이 되어 보고 싶어 발걸음을 늦추고 여기저기를 둘러 봤다. 다 둘러 보고 나서 어디서 과일을 사 먹을지, 꽃다발을 산다면 어디서 어떤 꽃다발을 살지, 잠시동안 정말 장을 보러 온 사람처럼 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꽃과 과일의 향기, 상인들의 활기찬 에너지에 취해 시장을 돌아 다니다 어느 수산물 매대 앞에 멈춰 섰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최고의 명물, Pike Place Fish Co.매장 앞에 도착했다!


  

이 매장이 유명세를 탄 건, 잘생긴 어부들이, 목이 좋은 곳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매대 밖에 있는 상인이 손님이 선택한 King Salmon을 매대 안에 있는 상인에게 던져주는 퍼포먼스를 펼치기 때문이었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비슷비슷한 해산물 가게가 즐비한 이 곳에서 그들의 자그마한 퍼포먼스는 엄청나게 큰 차별화를 이끌어 내며 시장 내 최고의 Fish market place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퍼포먼스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상품(?)으로 발전하여 이 매장에서 연어를 구매하는 고객들만 체험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도 어느 건장한 아저씨 한 분이 연어 받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연어가 Pitcher의 손에 들리는 순간, 매장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시선과 마음이 한 곳으로 향했다. 마치 월드시리즈 9회말 2아웃 풀카운트에서 마무리 투수의 마지막 피칭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3, 2, 1!!

  

  연어가 매대를 가로질러 날아 갔다. 그리고, 이상하리 만큼 믿음이 갔던, 멋쟁이 할아버지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곧바로 연어를 잡아내며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했다. 그 순간, 시장 안은 사람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할아버지도 환호에 멋진 세레모니로 답했다. 할아버지는, 자기 자신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가 되겠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매우 특별한 추억을 선사해 준 히어로였다. 그 순간만큼은.


연어, 날다!
멋쟁이 할아버지 덕분에 절대 잊지 못할 기분 좋은 추억 하나를 얻었다.

  Pike Place Fish Co.에서 연어 몇 마리가 더 날아다니는 걸 구경한 후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엄청나게 맛있어 보이는 향기와 비주얼로 입맛을 돋우는 군것질들을 힘겹게 지났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빨리 지나기 위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부터 내 눈에 들어왔던 베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과일 가게에 들러 블루베리 하나 달라는 내 말에 '한 개만 달라고? 그렇게 팔 수는 없지.'라는 아재개그를 치고 허탈하게 웃는 상인에게 블루베리 한 박스를 샀다. 그리고 블루베리를 사고 남은 잔돈을 레이첼에게 넣는 것도 있지 않았다. 나의 잔돈(Change)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길(Change)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레이첼에 돈을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크래프트지로 된 일회용 봉투에 블루베리를 게걸스럽게 꺼내 먹으며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나섰다. 비록 연어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을 연어는 손에 들려 있지 않았지만, 어제 아무도 없는 Market Front에서 펼쳤던 상상이 현실이 된 이 시간을 만끽하며 난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마스코트 중 하나인 돼지저금통, 레이첼.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는 시장만 있는 게 아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가장 유명한 건 공영시장이지만, 그 곳을 벗어 나서도 둘러 볼 곳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포스트 앨리(Post Alley)와 빅터 스테인부르크 파크(Victor Steinbrueck Park, 이하 빅터 파크)다.


  포스트 앨리는 여러 상점이 몰려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경리단 사잇길과 매우 비슷한 곳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거리의 초입부터 관광객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차우더의 성지 같은, pike place chowder 덕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Break time에 들렀음에도 몇몇 관광객이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다. 비단 pike place chowder가 아니더라도, 포스트 앨리는 외식을 즐기러 나온 시애틀라이트들로 항상 북적인다. 조금 이른 저녁 식사나 가볍게 Small beer를 즐기러 나온 시애틀라이트들이 많이 보였다. 그 사람들 틈에 섞여 가볍게 시애틀 로컬 크래프트 비어를 한 잔 마시는 것도 매력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옵션이 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혼자 보다는 여럿이서 즐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다.


사진 속 아저씨의 표정처럼 포스트 앨리를 처음 만나면 "여긴 뭐지?"라며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 시애틀에서 로컬 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꼭 포스트 앨리에서 맥주 한 잔 마셔 보고 싶다.


  내가 포스트 앨리에서 Small beer를 포기한건 빅터 파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끝자락에 위치한 빅터 파크는 예전에 무기고로 쓰였던 공간이라고 한다. 무기고를 없애고 조각 공원이 세워진 지금, 빅터 파크는 시애틀라이트들과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진 사람들, 버스킹 공연을 펼치거나 드로잉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다 같이 어우러져 있다. 지극히 Public한 공간에서 느끼는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이 곳 빅터 파크다.


  내가 포스트 앨리가 아닌 빅터 파크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맥주나 샌드위치를 들고 엘리오트 만을, 시애틀의 하늘을 바라보며 나 혼자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빅터파크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빅터 공원에서 바라보는 시애틀의 풍경, 아침과 낮, 해질녘과 저녁 시간 때 모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시애틀 최고의 명소는 이 곳이다.


  만약 시애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들렀으면 한다. 기왕이면 시장의 활기찬 에너지와 포스트 앨리에서의 맛있는 먹거리, 빅터 파크에서의 느긋한 휴식 같이  남기고 추억을 마음껏 상상해 본 후에 들렀으면 한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그 상상을 현실로 바꿔줄 거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본 게시글은 독립 출판물로 제작하기 위해 작업 중인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기의 초고입니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문의사항은 별도로 연락 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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