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조 Feb 01. 2021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오늘부터 제 직업은 '백수(白手)'입니다.

"기분이 어때? 시원섭섭하지?"

 이 질문을 들을 때면 대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그저 허허 웃으며 그런 거 같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꼭 한 마디씩 덧붙였다.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을 안 하면 실감이 나지 않을까요?"

 2021년 2월 1일, 오늘이 그 월요일이다. 기분이 어떠냐고? 여전히 별 다른 느낌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도 기다려온(?) 백수 라이프 첫날이건만 진짜 그냥 평범한 어느 날 같다. 지난주에 이 날을 상상할 때면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마냥 좋기만 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지난주와 비교했을 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문득 이유 모를 불안이 엄습해 온다.


 문득 한 번은, 이러다 계속 쉬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고용 불안에 대한 걱정에 흠칫 놀라고,

 또 한 번은, 카드값을 보고는 흠칫 놀라서 이거 못 갚으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하고,

 한 번은, 마냥 이렇게 놀고먹고 해도 되는 건지, 다른 애들은 지금도 무언갈 하고 있을 텐데 하며 불안해하고,

 돌고 돌아 퇴직이라는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며 불안해한다.


 그래서 그런가, 누군가 퇴직하고 첫날 마냥 행복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분이 부러워진다. 그분처럼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다채롭게 하루를 채워나갈 수 있어서 좋다.


 평일 오후 한적한 카페에 앉아 "회사를 그만뒀습니다."라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좋고, 

 백수가 됐다는 핑계로 밥 사달라며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좋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좋고,

 다시 한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살고 싶은 삶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다.

 

 누가 뭐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첫 직장이었다. 그 6년의 끝에 "아... 쉬고 싶다."는 말 밖에 남지 않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다. 10년 안에 팀장을 달겠다는 둥 뭐라는 둥 했었는데,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함께 하는 사람들과 동기들이 있기에 더 소중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과거일 뿐이다. 언젠가 사람들과 술 한 잔 걸치며 안주거리로 삼을 과거. 지금은 이 소중한 시간을 다채롭게 채우는데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Comfort nest를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 보고 싶었던 마음을 다지며 한 번 더 도약할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불안보다는 설렘과 기대, 행복이 가득한 나날이 되겠지.


 아무튼, 어째튼, 첫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프리 도비예요. 오늘부터,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백수의 삶을 즐겨보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