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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Aug 12. 2022

질문 넷,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Q. 죽기 전 꼭 해보고(혹은 가보고) 싶은 것(곳)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명확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파리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어딘가에 ‘버킷리스트'라는 식으로 정리해둔 리스트는 없습니다만, "죽기 전에 이런 건 꼭 한 번 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뉴욕/파리/런던에서 한 해의 마지막 카운트 다운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 리스트(?)도 이제 런던에서만 카운트 다운을 하면 되네요. 조금은 허황된 꿈같은 리스트를 소개하자면 '엠마 왓슨 배우와 저녁 식사 하기.'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하고 싶은, 반드시 하고 싶은 걸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위에서 답 한대로, 부모님과 함께 파리를 여행하는 겁니다. 2013년, <꽃보다 할배>를 보다 문득 떠오른 버킷리스트였고, 잊지 않기 위해 SNS 타임라인에 이렇게 적어뒀습니다. 


(2013년 7월 26일)

  어제 인화할 사진들을 고르다 보니 파리가 보고 싶어서, 지난번에 지나가다 잠깐 보고선 울컥, 뭉클했던 <꽃보다 할배>를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내가 걸었던 길, 내가 갔던 카페, 내가 본 풍경들이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참 뭉클하고 좋았지만 가슴 한 편에 또 다른 무언가가 가득 찼다.

  나중에, 언젠가, 아버님께서 은퇴하시고 어머님의 머리카락에 눈이 내리면, 반드시 두 분을 모시고 파리로 여행을 떠날 거다.

  나는 <꽃보다 할배>에서 미대형이 하고 계신 그 역할, 그 모습 그대로, 천천히 두 분의 걸음에 맞춰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내가 갔던 카페나 레스토랑에도 모시고 갈 생각이다.

  그럼 우리 부모님께서는 H4 선생님들처럼 밝게 웃으시고,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구야형, 신구 선생님처럼 숙소에서는 고생했다며 어깨를 다독여주시겠지. 그냥 그렇게 지금의 삶에서 잠깐 벗어나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하는 거다. 그때까지 파리가 변하지 않고 있다면 변하지 않은 대로, 변했다면 또 변한 대로, 나에게 더 특별한 시간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아니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고맙습니다, <꽃보다 할배>. 


  2012년,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의 도움 덕분에 파리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교환학생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그때 쌓은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말 별거 아니지만, 부모님과 함께 파리에 가서, 공부했던 곳, 살았던 곳, 친구들이랑 밥을 먹었던 곳, 좋아하는 카페, 좋아하는 풍경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이런 것들을 누리고 즐겼었다고.

  중간중간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들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오랑쥬리를 꼭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모네의 수련을 보여 드리고 저처럼 그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계절이 맞으면 지베르니도 모시고 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생에 첫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인 Le Pre Catelan이나 정말 클래식한 프렌치 레스토랑도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솔직히 부모님께서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꺼리실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꼭 함께 정찬을 먹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한국 음식이 드시고 싶으실 테니, 비록 여행 중에는 한식을 안 먹지만, 파리에서 제일가는 한식 레스토랑을 찾아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비행기에서는 <미드나잇 인 파리> 보여 드리고, <꽃보다 할배>를 보여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코노미를 타더라도 부모님은 비즈니스로 모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행시간이 길 테니까요.
  가능하다면 동생 내외들도 다 같이 가면 좋겠네요. 조카(들)도 다 데리고 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더 즐거워하실 것 같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습니다. 여행 기간도 길게 잡아야 할 것 같고요. 


  이렇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버킷리스트입니다. 다른 버킷 리스트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것만큼은 반드시 꼭 해보고 싶습니다. 꼭 할 겁니다.


2022년 7월 16일 토요일,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에 The Hoxton, Rome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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