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 로마 여행 동안 방문했던 핏제리아들.
피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치킨과 피자 중 하나를 고르라면 피자를 고른다. 호캉스를 할 때면 저녁식사로 좋아하는 레드 와인 한 병과 그 동네에서 유명한 것처럼 보이는 페퍼로니 피자를 시켜 먹는다.
그러니 로마 여행에서 피자가 중심이 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전 가면 성심당 가고, 군산 가면 이성당 가고, 부산 가면 OPS 가는 것과 비슷했다.
로마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향한 곳도 핏제리아 Pinsere였다. 이 핏제리아가 호텔에서 도보 거리에 있었던 건 매우 큰 행운이었다.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아 주문한 피자를 한 입 먹자마자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매장에 들어가면 도우 위에 토핑이 올려진 다양한 피자들이 놓여 있다. 제일 자신 있는 피자가 어떤 건지 물었더니 모든 게 다 자신 있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는 버섯이 올라간 피자와 프로슈토가 올라간 피자를 추천해 줬는데, 두 번째로 추천받은 프로슈토, 모짜렐라, 바질, 드라이 토마토가 토핑 된 피자를 골랐다.
매장 바로 앞에 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완성된 피자를 받는 순간 이미 행복해졌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떠나온 해외여행에다, 날이 너무 좋았고, 오는 길에 들렀던 카페의 커피도 맛있었기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글의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피자 하나로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맛있는 피자였다.
첫 핏제리아 선택이 매우 훌륭했던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채로 로마 시내를 열심히 돌아다니다 저녁 시간에 맞춰 트레비 분수 근처에 있는 두 번째 핏제리아를 방문했다. 두 번째 핏제리아는 Piccolo Bucco.
워낙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라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대기줄이 무척이나 길었다. 여행을 혼자 다니다 보면 줄을 서서 기다리다 먹는 걸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는 기다렸다 먹길 참 잘했다. 로마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나폴리 피자 스폿 중 한 곳이라 생각한다.
사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꽤 많은 편이다. 매우 심플한데 그래서 더 손이 간다. 점심에 먹었던 Pinsere가 다양한 속재료가 들어간 김밥이었다면, 이곳은 맛있는 충무김밥 같은 느낌. 도우는 나폴리 피자답게 쫄깃하다. 도우에 토마토소스, 치즈, 올리브유를 돌돌 말아서 먹으면 자극적이지 않지만 조화롭게 어울린다. 자극적인 맛을 원한다면 토핑이 많은 메뉴들을 시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둘째 날, 세 번째 핏제리아는 Pizza e Mozarella. 여기는 사각형 모양의 피자를 파는데, 어찌 보면 이게 제일 '로마식 피자'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다. 주문하는 방식도 특이한데, 긴 사각형 피자 중에 원하는 피자를 고른 후 원하는 사이즈대로 잘라 준다. 그래서 조금씩 여러 가지 맛을 즐기는 게 가능하다. 매장이 매우 협소한데, 사람들은 계속 온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원한다면 다양한 종류의 피자를 골라 먹을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가게다. 동행이 있다면 여러 가지 메뉴를 테이크 아웃해서 근처에 자리 잡고 먹는 걸 추천한다. 로마의 모든 곳이 매우 멋진 야외 테라스가 되어 줄 거다.
처음 주문한 메뉴는 가지가 올라간 피자였다.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아 매우 조심스레 주문량을 결정했다. 레모네이드도 하나 추가했다. 그리고 내가 주문한 피자를 받아 스탠딩 바에 서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잘못 생각했다 싶었다. 더 시켰어야 했다. 어쩜 그리 맛있던지.
그렇게 호시탐탐 재주문할 기회를 노리던 중 어떤 고객이 들어와 어떤 메뉴를 물었고, 5분 후에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바로 추가 주문을 넣는 걸 보고 그때부터 먹는 속도를 늦춘 후, 그 피자가 나오자마자 추가로 주문했다. 생방울토마토와 부라타 치즈, 루꼴라가 올라간 피자였다. 어찌 보면 그냥 토마토소스가 발라진 빵 위에 샐러드를 얹어 먹는 건데, 이것도 참 별미였다.
네 번째로 방문한 피자 가게는 Trappizzino.
로마에서 트렌디하기로 유명한 셰프님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피자라고 한다. 피자보다는 만두/바오와 유사한 형태에 가깝다. 로마 시내 이곳저곳에 있기 때문에 가볍게 요기를 하고 싶다면 한 번쯤 찾아가기 좋다. 내가 방문했을 때, 가게의 매니저님(혹시 그 유명한 셰프님일지도 모른다...) 엄청 열정적으로 메뉴들을 소개해줬다. 속사포 랩처럼 쏟아내는 설명 때문에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피자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만큼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메뉴판에 친절하게 재료가 적혀 있으니 그걸 보고 고르면 된다.) 그리고 와인도 막 이것저것 설명해주셨는데, 술을 못 마신다 하니 매장에서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를 무척이나 추천했다. 그래서 Trapizzino 두 개와 레모네이드를 하나 시켰는데, 레모네이드가 별미라 시키길 잘했다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원했던 피자와는 많이 달랐다. 분명히 맛도 있고, 익숙한 피자 토핑이 아닌 새로운 토핑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매우 매력적이다. 로마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건 알겠지만, 만두나 바오, 호빵으로 다양한 토핑을 먹는 게 익숙한 우리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로마에서 피자를 먹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이곳에 들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호텔 근처에 50 Top Pizza에 리스트업 된 핏제리아가 있어서 야식 삼아 포장해 와서 먹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이렇게 Top 50 Pizzeria를 선발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내 핏제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핏제리아를 평가하고 랭킹을 부여하고 있다. 이탈리아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피자를 먹고 싶을 때 이를 참고하여 방문할 핏제리아를 찾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오가며 봤던 EAT PIZZA MAKE LOVE 네온사인이 마음에 쏙 들었던 것도 방문한 이유 중 하나다. 야식으로 먹는 거 호텔에서 먹고 싶어서 포장해 와서 먹었는데, 한 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책임진 마지막 핏제리아는 Remo A Testaccio였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이번 로마 피자 여행에서의 베스트였다. 가게가 있는 동네도 매력적이고, 테라스 자리도 넉넉하고, 조금 짜게 느껴지는 것마저 이탈리아스러워서 더 좋았다.
마르게리타를 먹을까 다른 걸 먹을까 고민하다 살라미가 더해진 디아볼라를 주문했는데, 잘했다 싶었다. 처음에 치즈에 파묻힌 살라미가 보이질 않아 주문을 받았던 직원에게 "나 디아볼라 시켰는데, 소시지가 안 보여."라고 얘길 했더니 시크하게 치즈 밑에 있는 살라미를 가리키더라. 살라미 크기가 거의 호떡 하나 크기로 거대해서 소스라고 생각했던 거다. 크기도 혼자 먹기에 많아 보였는데, 먹다 보면 금세 다 없어진다. 맥주나 탄산음료와 궁합도 매우 좋다.
만약 짠 음식을 기피한다면, 소시지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나 야채가 많은 메뉴를 시킨다면 밸런스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