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한 해의 해질녘이다. 올해는 무척 바빴다. 바쁨은 내가 시도하지 못한 많은 것의 이유가 됐다. 2주에 한 번 돌아오는 마감마다 2주 뒤에 나갈 책을 만들었다. 남들보다 2주 빨리 산 셈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이번 마감만 끝나면 좀 여유로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다음 마감이 시작되는데도. 결국 이 바쁨의 굴레에선 헤어나올 수 없었다.
바쁜 업무 중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할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등등 이런저런 고민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해야할 일이 많을 땐 눈앞에 놓인 일을 해치우기 바쁘다. 고민은 생각할 여유가 생겼을 때 찾아온다. 고민이 커진다는 건, 현재가 감당할 정도라는 뜻이다.
어쩌면 바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감일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현재를 보지 못했다. 돌아오는 마감 틈틈이 퇴근 후 저녁이 있었고, 주말이 있었다.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났고, 술을 마셨다. 내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했지만 시간은 있었다. 잡지 못했을 뿐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생각만 하다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결론이 나진 않는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를 불안해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불안에 익숙해지고, 현재에 안주하다보면 삶의 이정표는 흐려진다.
무엇이든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운동에 관심이 없던 내가 1년 뒤 지금 '1년 동안 요가한 사람'이 된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엔 또다른 무언가를 1년 동안 꾸준히 한 사람이 돼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자꾸 미루지 말고, 당장 시작해보자. 실패해도 괜찮고, 막상 해보니 나랑 안 맞아도 괜찮다. 기우뚱하며 걸어도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니까, 부딪히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 테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시간이 있다. 바쁘다는 말은 사치다.